정족산
정족산은 산의 생김새가 마치 세 발 달린 가마솥과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산이다. 정족산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강화도에서 가장 큰 사찰인 전등사와 정족산성 등 많은 유물이 남아 있다. 특히 정족산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사고터가 남아있어 유적답사 및 가족산행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다. 산행은 전등사에서 시작된다. 전등사의 요사채 뒤로 난 길을 곧
산 주요 정보
지번주소 | 인천 강화군 길상면 | ||
전화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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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관광지 3개
주변 캠핑장 5개
더숲관광농원캠핑장은 인천 강화군 길상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잔디, 기타 사이트가 총 10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매점, 장작판매, Wi-Fi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강화도 아침 숲속야영장은 인천 강화군 길상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에코야영장은 인천 강화군 길상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기, 온수, Wi-Fi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강화도 청소년 수련원은 인천 강화군 길상면 장흥리 에 위치하고 있으며 잔디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햇솔오토캠핑장은 인천 강화군 길상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파쇄석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장작판매, Wi-Fi, 장비대여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후애돈대, 2.6km
주소 :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 954
문의 : 032-934-2184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에 위치한 돈대이다. 후애돈대(後崖墩臺)는 양암(陽岩)돈대, 송곶(松串)돈대, 동검북(東檢北)돈대, 미곶(彌串)돈대, 장곶(長串)돈대(인천유형문화재 제29호), 북일곶(北一串)돈대, 점암(點岩)돈대 등과 함께 길상면에 위치하고 있다. 돈대는 외침의 방비를 위하여 강화도 섬 전체에 마치 톱니바퀴처럼 둘러 쌓은 진지 이다. 축성연대는 53개 돈대중 49개 돈대는 조선숙종 5년 (1679년) 기미년에 유수 윤이제 재임시 어명에 의한 병조판서 김석주의 지휘를 받아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 삼도의 승군(僧軍) 8,900명과 어영군 4,300명이 40일 만에 완축하였으며 빙현돈은 숙종44년 (1718년)에 유수 권성이 축조 하였으며 철북돈은 다음해인 숙종 45년 (1719)에 유수 심현택이 축조 하였고 초루돈은 그 다음에 숙종 46년 (1720)에 유수 어유구가 축조 하였고 작성돈은 영조 (1725)에 유수 박사익이 축조하였다. 그 후 양암돈과 갈곶돈 두 돈대는 너무 오래되어 폐쇄하였고 51개 돈대만 수호 관리하였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에 위치한 돈대이다. 후애돈대(後崖墩臺)는 양암(陽岩)돈대, 송곶(松串)돈대, 동검북(東檢北)돈대, 미곶(彌串)돈대, 장곶(長串)돈대(인천유형문화재 제29호), 북일곶(北一串)돈대, ...
사기리 탱자나무, 2.7km
주소 : 인천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135-10
사기리 탱자나무는 적병이 성벽 밑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심은 나무로 높이 4m, 밑둘레 1m, 수령은 약 400년이다. 땅 위 2.8m 높이에서 세갈래로 갈라져 용트림 하는 모양을 하고 있다. 1962년에 천연기념물 제 79호로 지정되었다. 이 나무는 4월이면 잎보다 지름 3~5cm의 흰꽃이 먼저 피고 열매를 맺는 가을이면 노랗게 탱자열매가 익는다. 이 탱자나무는 갑곳리의 탱자나무(천연기념물 제78호)와 함께 강화도가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선이 됨을 입증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사기리 탱자나무는 적병이 성벽 밑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심은 나무로 높이 4m, 밑둘레 1m, 수령은 약 400년이다. 땅 위 2.8m 높이에서 세갈래로 갈라져 용트림 하는 모양을 하고 있다. 1962년에 천연기념물 제 ...
이건창 생가, 2.8km
주소 :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해안남로1114번길 6
문의 : 032-930-3114
천연기념물 제79호로 지정되어 있는 사기리 탱자나무 맞은 편에는 영재 이건창 선생의 생가인 명미당이 있다. 이건창 선생(1852∼1898)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며 대문장가로 강직한 성품을 지녀 고종의 총애를 받았다고 전한다. 15세의 어린나이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특히 부정한 관리를 처단하는데 주저함이 없어 존경 받았던 분이며, 양명학의 지행합일을 내세운 강화학파의 마지막 대학자였다. 저서로는 [당의통략]이 있는데 이는 파당과 족친을 초월하여 공정한 입장에서 당쟁의 원인과 전개과정을 기술한 명저로 알려져 있다. 이 건물이 지어진 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약 100여년이 넘은 것으로 판단되며 경기도 지방의 전형적인 살림집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주변이 자연석 담장으로 둘러진 ㄱ자형 평면을 가진 중부지방의 민가형태로 안으로 들어가면 명미당(明美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선생의 묘는 양도면 건평리에 소재한다. 건물 바로 옆에 병인양요 때 강화에서 자결한 조부 이시원 선생의 묘가 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천연기념물 제79호로 지정되어 있는 사기리 탱자나무 맞은 편에는 영재 이건창 선생의 생가인 명미당이 있다. 이건창 선생(1852∼1898)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며 대문장가로 강직한 성품을 지녀 고종의 총애를 받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