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장 상세 정보
* 땅바닥 형태
잔디 | 데크 | 파쇄석 | 맨흙 | 기타 |
* 이용조건
화로대사용 | 동계캠핑 | 반려동물출입 |
* 편의시설
전기 | 온수 | 샤워실 | 매점 | 장작판매 |
온수샤워 | WiFi | 장비대여 | 수영장 | 운동장 |
* 주변시설
낚시 | 해수욕장 | 계곡 | 산책로 | 강 |
호수 |
* 숙박시설
카라반 | 팬션 | 방갈로 | 글램핑 |
덕소캠핑장은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월문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파쇄석 사이트가 총 36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매점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인근에 가볼만한 관광지는 묘적사, 구산성지, 남양주 홍릉과 유릉이 있고, 주변에 다른 캠핑장으로 에코글램핑플레이팜, 깊은 산속 옹달샘, 미사리 가야공원 캠핑장, 선경농원, 노마드 캠프가 있습니다.
야영장 사이트 수 | 36개 | ||
편의시설 | 전기,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매점 | ||
동계캠핑 | 불가능 | ||
반려동물 출입 | 불가능 | ||
땅바닥형태 | 파쇄석 | ||
지번주소 |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월문리 1016-2 | ||
전화번호 | 070-7779-4023 (다른 전화번호 보기) | ||
홈페이지 | 홈페이지로 이동 |
잔디 | 데크 | 파쇄석 | 맨흙 | 기타 |
화로대사용 | 동계캠핑 | 반려동물출입 |
전기 | 온수 | 샤워실 | 매점 | 장작판매 |
온수샤워 | WiFi | 장비대여 | 수영장 | 운동장 |
낚시 | 해수욕장 | 계곡 | 산책로 | 강 |
호수 |
카라반 | 팬션 | 방갈로 | 글램핑 |
에코글램핑플레이팜은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에 위치하고 있으며 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잔디 사이트가 총 8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매점 등의 편의시설과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깊은 산속 옹달샘은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진중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맨흙 사이트가 총 34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장작판매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미사리 가야공원 캠핑장은 경기 하남시 미사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게시판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데크, 맨흙 사이트가 총 67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매점, 장작판매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선경농원은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월문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게시판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총 5개의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화장실, 샤워실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노마드 캠프는 경기 남양주시 경춘로611번길에 위치하고 있으며
묘적사, 4km
주소 :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월문리 222번지
문의 : 031-576-0784
* 빼어난 경관과 사찰의 어우러짐, 묘적사 * 묘적사는 남양주시 와부면 월문리 222번지 묘적산(妙寂山) 자락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 봉선사의 말사이다. 흔히 백봉산(柏峰山)이라 불리는 묘적산의 남쪽 골짜기 아늑한 곳에 묘적사가 있다. 묘적사 골짜기는 협곡으로 개울을 따라 꼬불꼬불 휘돌아 들어가기 때문에 마치 별천지를 찾아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또한 골짜기가 길어서 가뭄에도 물이 많고 절 인근에 폭포도 있어 경관 또한 좋은 곳이다. 대웅전 주변의 건물들은 자연스럽게 휘어진 통나무 기둥으로 되어 있고 제법 넓은 못과 잔디밭이 있으며, 오래된 10여 그루의 회양목들은 큰 석종처럼 다듬어 놓은 것도 보기가 좋다. 묘적사에 대한 기록은 뚜렷한 것이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여러 문헌들에서 사찰의 존재는 살필 수 있으나, 사적에 대해서는 전혀 기록된 바가 없으며, 단지 절 앞마당에 세워져 있는 팔각칠층석탑만이 오래된 세월을 대변해 주고 있다. 그런데 절에서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묘적사는 승병(僧兵)양성 도량이었다고 한다. 주지스님의 말씀에 의하면 묘적사는 본래 국왕 직속의 비밀기구가 있던 곳으로 왕실산하의 비밀요원을 훈련시키기 위해 절을 짓고, 선발된 인원을 승려로 출가시켜 고도의 군사훈련을 받게 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이유로 임진왜란 때 집중 공격을 받아 폐허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이 말을 증명하듯 절에서 동쪽으로 5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활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평탄한 대지가 있고, 이곳에서는 간혹 화살촉이 발견되곤 한다. 우리나라는 호국불교라는 이념 아래 임진왜란과 병사호란 등 국난 때마다 많은 승려들이 국가 수호의 첨병으로 앞장섰다. 아마도 이 곳 묘적사 역시 승려들이 무예를 갈고 닦는 수련장으로 활용이 되었던 것 같다. 또한 최근에 들어서도 이러한 묘적사의 성격을 이해한 박정희 대통령이 과거와 같은 호국교육장으로서 복원을 하고자 했으나 대통령의 죽음으로 중지되었다고 한다. * 묘적사 내 볼거리 *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승방·요사채 2동이 있다. 대웅전 안에는 관세음보살상을 비롯하여 후불탱화와 산신·칠성탱화가 모셔져 있다. 유물로는 남양주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된 팔각칠층석탑이 유명하다. 이 탑은 월정사팔각구층석탑·수종사(水鐘寺)오층석탑과 양식이 비슷하여 조선 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3층과 4층 사이의 체감률이 부자연스럽고 절에서 동쪽으로 30m 가량 되는 곳에 탑재가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본래 7층은 아니고 대략 11층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빼어난 경관과 사찰의 어우러짐, 묘적사 * 묘적사는 남양주시 와부면 월문리 222번지 묘적산(妙寂山) 자락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 봉선사의 말사이다. 흔히 백봉산(柏峰山)이라 불리는 묘적산...
구산성지, 4.7km
주소 : 경기도 하남시 미사강변북로 99
* 김성우(안토니오) 성인을 기리는 장소, 구산성지 * 2001년 4월 9일 하남시 향토유적 제4호로 지정되었다. 기해박해(己亥迫害) 때 순교한 김성우(안토니오)聖人의 고향(故鄕)이고 묘소(墓所)가 있는 곳으로 신앙공동체의 모습을 200여 년을 간직하고 있는 평화의 은혜가 가득한 성지이다. 평화의 은혜가 가득한 구산성지는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과 여덟 분의 순교자가 묻힌 거룩한 聖地(성지)이다. 이곳 뒷산이 거북 형상을 닮았다하여 거북 구(龜)자와 뫼 산(山)자를 써서 '구산' 이라고 하였다. 구산은 한강변 미사리 조정 경기장 옆에 위치해 있으며 서울에서 불과 20분 거리 내에 있으며, 시원스레 뚫려있는 강변도로와 중부고속도로, 구리-판교 고속도로를 이용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교통의 편리함이 구산성지를 찾는 순례자들에게 매력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 구산성지 내 볼거리, 성모자상 * 한국전쟁 때는 원로 신부들의 피신처로도 이용되었다. 서울대학교 미대 학장을 지낸 김세중(金世中)이 조각한 성모자상(聖母子像)이 유적지 내 잔디밭 한가운데 있다. 교통이 편리하여 순례자들이 끊이지 않으며, 조경이 아름다워 드라마와 광고, 영화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다. 인근에 미사리 카페촌과 조정경기장이 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김성우(안토니오) 성인을 기리는 장소, 구산성지 * 2001년 4월 9일 하남시 향토유적 제4호로 지정되었다. 기해박해(己亥迫害) 때 순교한 김성우(안토니오)聖人의 고향(故鄕)이고 묘소(墓所)가 있는 곳으로 신앙공...
남양주 홍릉과 유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4.7km
주소 : 경기도 남양주시 홍유릉로 352-1 (금곡동)
문의 : 031-591-7043
* 조선왕조 마지막 두 황제를 모신 곳, 홍릉.유릉(홍유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조선왕조 마지막 두 황제와 그 비를 모신 이곳은 사적 제 207호로 지정되어 있다. 홍릉은 조선왕조 26대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민씨의 능이고, 유릉은 27대 순종황제와 원비 순명황후 민씨 및 계비 순정황후 윤씨를 모신 능이다. 원래 홍릉은 명성황후 민씨의 능으로서 서울 청량리에 있었으나 고종의 승하로 국장할 때 이곳에 옮기어 함께 모셨다. 유릉은 원래 순명황후 민씨의 능으로 양주 용마산에 있었으나 순종 인산 때 이곳에 이장하였고, 1966년 순정황후 윤씨를 또한 이곳에 함께 모셨다. 홍릉과 유릉은 종래의 왕릉과 형식이 다르며 모두 광무 이후 황제라 칭하던 왕이었던 만큼 명태조의 효릉을 본따서 조영하였다. 종래의 정자각 대신 정면 5칸, 측면 4칸의 침전을 세웠고 그 앞쪽으로 문무석을 세우고, 홍살문까지 기린 코끼리 해태 사자 낙타 말의 순으로 석수를 세워 놓고 있다. 홍릉 석물이 전통적인 수법으로 만들어진데 대하여 유릉 석물은 사실적이고 개성적이며 입체감을 잘 살리고 있다. 청량리에서 경춘가도를 가다 도농동 삼거리 검문소에서 춘천쪽으로 약4km 지점 오른편에 울 창한 소나무 숲속에 위치하고 있다. * 홍릉과 유릉이라는 명칭에 대하여 *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은 왕·공족의 분영은 묘로 한다는 정책을 펼쳤다. 왕의 무덤인 능陵도 세자의 무덤인 원園도 아닌 일반인의 무덤인 묘墓로 격하시키겠다는 뜻이었다. 왕공가궤범을 따르자면 고종과 순종의 무덤은 왕릉이 될 수 없었는데, 이때 왕실에서 생각해낸 것이 고종의 비 명성황후의 홍릉과 순종의 비 순명효황후의 유릉이었다. 고종의 장례 때는 명성황후의 재궁을 원 홍릉(청량리)에서 현 홍릉(남양주시)으로 옮겨와 합장하였고, 순종의 장례 때에도 구 유릉(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에서 순명효황후의 재궁을 모셔와 합봉(남양주시)하였다. 새로운 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능의 칭호를 가져다 쓰는 것이었기 때문에 일제로서는 이것을 막을 법적인 근거가 없었으며, 능의 이장 문제 또한 이왕직이나 총독부가 관여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 왕실 내의 문제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 문제는 별 탈 없이 처리되었다. 그러나 본래 왕릉 장법에서는 왕비의 능에 왕을 합장할 경우엔 새로운 능호를 쓰게 되어 있다. 중종이 장경왕후의 능인 희릉 옆에 같이(이때의 경우 한 구역 안 두개의 능침이라 하여 동원 이강이라 한다. 봉분은 따로 떨어져 두개이지만 제사는 한 정자각에서 받는다)안장되었을 때 희릉의 능호를 같이 쓸 수 없다 해서 정릉으로 능호를 새로 올렸던 전례가 있고, 숙종은 인현왕후의 능에 묻을 것을 미리 지시했기 때문에 인현왕후의 능호인 명릉을 그대로 사용하였다(이 경우는 봉분이 붙어있어서 쌍릉이라고 한다). 원래 왕릉 장법에 따르면 새로운 능호를 써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고종과 순종의 경우는 일제의 간섭으로 인하여 그렇지 못하게 된 것이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조선왕조 마지막 두 황제를 모신 곳, 홍릉.유릉(홍유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조선왕조 마지막 두 황제와 그 비를 모신 이곳은 사적 제 207호로 지정되어 있다. 홍릉은 조선왕조 26대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