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장 상세 정보
* 땅바닥 형태
잔디 | 데크 | 파쇄석 | 맨흙 | 기타 |
* 이용조건
화로대사용 | 동계캠핑 | 반려동물출입 |
* 편의시설
전기 | 온수 | 샤워실 | 매점 | 장작판매 |
온수샤워 | WiFi | 장비대여 | 수영장 | 운동장 |
* 주변시설
낚시 | 해수욕장 | 계곡 | 산책로 | 강 |
호수 |
* 숙박시설
카라반 | 팬션 | 방갈로 | 글램핑 |
임송캠프장은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내곡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파쇄석 사이트가 총 30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화장실, 샤워실, 매점 등의 편의시설과 운동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인근에 가볼만한 관광지는 봉영사, 남양주 사릉, 나만갑선생신도비가 있고, 주변에 다른 캠핑장으로 사노리숲캠핑장, 라라차차캠핑장, 산들소리 수목원 캠핑장, 노마드 캠프, 마실캠프장이 있습니다.
야영장 사이트 수 | 30개 | ||
편의시설 | 전기, 화장실, 샤워실, 매점 | ||
동계캠핑 | 불가능 | ||
반려동물 출입 | 불가능 | ||
땅바닥형태 | 파쇄석 | ||
지번주소 |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내곡리 501-2 | ||
도로명주소 | 금강로746번길 61 | ||
전화번호 | 031-571-0161 (다른 전화번호 보기) | ||
홈페이지 | 홈페이지로 이동 |
잔디 | 데크 | 파쇄석 | 맨흙 | 기타 |
화로대사용 | 동계캠핑 | 반려동물출입 |
전기 | 온수 | 샤워실 | 매점 | 장작판매 |
온수샤워 | WiFi | 장비대여 | 수영장 | 운동장 |
낚시 | 해수욕장 | 계곡 | 산책로 | 강 |
호수 |
카라반 | 팬션 | 방갈로 | 글램핑 |
사노리숲캠핑장은 경기 구리시 동구릉로459번길에 위치하고 있으며
라라차차캠핑장은 경기 구리시 사노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들소리 수목원 캠핑장은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잔디, 데크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노마드 캠프는 경기 남양주시 경춘로611번길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실캠프장은 경기 남양주시 오남읍 팔현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총 37개의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매점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봉영사(남양주), 4.5km
주소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2로 84-77
문의 : 031-571-0555
* 조선시대 왕실의 원찰 중 하나, 봉영사 * 봉영사(奉永寺)는 경기도 남양주시 천점산 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원찰(願刹)이란 다른 말로 원당(願堂)이라고도 하는데, 말 그대로 원(願)을 빌어주는 곳을 말한다. 불교국가였던 고려와는 달리 조선은 유교를 국시(國是)로 하는 “배불숭유(排佛崇儒)”정책을 일관되게 지속하여 불교를 배척하였다. 하지만 유교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치관이나 규범 등에 치우칠 뿐 사람들이 가지는 사후세계에 대한 불안과 현실의 고통에 대해서는 해답을 주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죽은 자의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가게하고, 자신들의 복을 빌어줄 곳은 불교밖에는 없다고 여기는 백성들은 불교를 계속 신봉하였다. 또한 왕실이나 양반들도 개인적으로는 원찰을 만들어 조상의 영혼을 위로하고 자신의 복을 빌었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서울의 봉은사, 안성의 청룡사, 화성의 용주사, 남양주의 봉선사와 흥국사 등이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왕실의 원찰이다. 봉영사도 이와 같은 원찰의 하나입니다. 봉영사 입구에 보면 순강원(順康園)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순강원은 훗날 인조(仁祖)의 할머니가 되시는 선조의 후궁 인빈(仁嬪) 김씨의 묘소이다. 이렇게 순강원의 원찰로 지정된 봉영사는 절 이름까지도 봉인암(奉仁庵)에서 “순강원을 오래도록 받든다”는 뜻으로 봉영사로 바뀌게 된다. * 봉영사의 유래 * 599년(신라 진평왕 21)에 창건하고 봉인암(奉仁庵)이라고 불렀다. 이후 조선 중기까지의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1737년(영조 13) 태전(太顚)과 해청(海淸)·치학(致學)이 중창하였다. 인근에 선조의 후궁이었던 인빈(仁嬪) 김씨의 묘와 그의 둘째아들 신성군(信城君:?∼1592)의 묘가 있는데, 1755년(영조 31) 묘역을 순강원(順康園)으로 꾸미면서 이 절을 인빈김씨와 신성군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로 삼았다. 순강원이 들어서면서 재실과 신도비·정자각이 세워졌으며, 절 이름도 봉영사로 바뀌었다. 이 때 절에 토지 10결을 내려 설날과 추석 등 명절에도 제사를 지내게 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조선시대 왕실의 원찰 중 하나, 봉영사 * 봉영사(奉永寺)는 경기도 남양주시 천점산 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원찰(願刹)이란 다른 말로 원당(願堂)이라고도 하는데, ...
남양주 사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4.6km
주소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로 180-1 (진건읍)
* 정순왕후의 무덤, 사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조선 왕조 시대 때 가장 비운의 여인으로 꼽히는 단종(端宗)의 비(妃)인 정순(定順) 왕후(1440∼1521년)는 1453년 왕비로 간택되었으며 2년 뒤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의덕(懿德) 왕대비에 봉해졌다. 하지만 1457년 단종은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영월에 있는 유배지로 보내지고 정순 왕후도 부인으로 강봉된다. 그 해 단종은 사사되면서 정순 왕후는 궁궐에서 추방당해 동대문 밖 숭인동 동망봉(東望峰) 기슭에 들어가 살았다. 단종의 억울한 죽음에 왕후는 늘 통곡하였으며, 이로 인해 동정곡(同情哭)과 동망봉 이외에도 많은 유래가 생겼다.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된 정순왕후는 힘든 생활 속에서도 세조가 내린 집과 식량을 끝내 받지 않았다. 평생을 청빈(淸貧)하게 살다간 정순 왕후는 죽어서도 여인네들의 한을 달래는 토속신으로 숭앙되었다. 왕후가 자식이 없었으므로 단종의 누이인 경혜공주가 무덤을 만들었고, 숙종 24년(1698)에 단종이 왕으로 복위 되면서 정순왕후라 봉해졌고 왕후의 무덤을 사릉이라 했다. 하지만 살아 생전 생이별을 해야 했던 두 분은 죽어서도 같이 있지 못하고 떨어져 있어, 한 곳으로 모으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 사능의 형태 * 사릉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이 설치되지 않았으며, 봉분 앞에 상석 1좌, 상석 양측에 망주석 1쌍을 세웠다. 봉분 주위에 석양(石羊)·석호(石虎) 각 1쌍이 배치되어 있고, 그 바깥쪽으로 3면의 곡장(曲墻; 나지막한 담)이 둘러져 있다. 그 아랫단에는 문인석·석마(石馬) 각 1쌍 그리고 장명등이 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정순왕후의 무덤, 사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조선 왕조 시대 때 가장 비운의 여인으로 꼽히는 단종(端宗)의 비(妃)인 정순(定順) 왕후(1440∼1521년)는 1453년 왕비로 간택되었으며 2년 뒤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나만갑선생신도비, 4.6km
주소 : 경기 구리시 사노동 산 163번지
신도비란 종2품 이상의 관원의 묘가 있는 근처 길가에 세우는 비석으로 정3품 당상관(堂上官) 이상의 벼슬을 한사람이 택술(擇述)하는 것이 예이다. 나만갑(1592~1642)선생의 본관은 안정(安定)이며 자는 몽뢰(夢賚)호는 구포(毆浦)이며, 광해군 5년(1613)에 사마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이 되었으나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서궁 유폐 사건으로 낙향, 오로지 학문에 열중하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순릉참봉에 배수되었다 그 해에 알성문과에 응시 병과에 급제하였다. 그후 홍문관 교리로 있던 때에 당쟁에 휘말려 강동현감으로 좌천되었다. 1627(인조5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도에서 인조를 보위 하였다. 환도후 병조정랑, 홍문관 수찬 사헌부 지평등을 두루 거친후 1635년 형조참의로 임금을 보위하였다. 이어 병조 참의가 되고 무고로 남해로 유배되었다가 1639년 영주에서 사망하였으며, 후에 좌의정으로 추증(追曾)되었다. 저서로는 (병자록:丙子錄)(구포집:毆浦集)이 있으며 신도비의 글은 청음 김상헌이 글을 지었고, 추기(追記)는 동춘당 송준길이 쓰고 손자 양좌(良佐)가 지었다. 이외에도 문곡 김수항이 지은 지명(誌銘)과 우암 송시열이 글을 지은 묘표(墓表)가 있다. 1985년 6월 28일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신도비란 종2품 이상의 관원의 묘가 있는 근처 길가에 세우는 비석으로 정3품 당상관(堂上官) 이상의 벼슬을 한사람이 택술(擇述)하는 것이 예이다. 나만갑(1592~1642)선생의 본관은 안정(安定)이며 자는 몽뢰(夢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