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 얼음골 휴양지
왕국 얼음골 휴양지는 경남 고성군 상리면 동산리 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인근에 가볼만한 관광지는 문수암, 운흥사, 고성학림최영덕씨고가가 있고, 주변에 다른 캠핑장으로 얼음골 야영장, 숲속가든 캠핑장, 용소유원지 야영장, 고성잔디캠핑장, 용소 자연발생유원지가 있습니다.
캠핑장 주요 정보
야영장 사이트 수 | 전화문의 | ||
편의시설 | 전화문의 | ||
동계캠핑 | 전화문의 | ||
반려동물 출입 | 전화문의 | ||
땅바닥형태 | 전화문의 | ||
지번주소 | 경남 고성군 상리면 동산리 왕국 얼음골 공원 | ||
전화번호 | 055-673-9111 |
주변 관광지 3개
주변 캠핑장 5개
얼음골 야영장은 경남 고성군 상리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화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파쇄석, 기타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장작판매, Wi-Fi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숲속가든 캠핑장은 경남 사천시 사남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화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데크, 파쇄석, 맨흙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장작판매, Wi-Fi, 장비대여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용소유원지 야영장은 경남 사천시 사남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성잔디캠핑장은 경남 고성군 하일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화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데크, 기타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매점, 장작판매, Wi-Fi, 장비대여 등의 편의시설과 수영장, 운동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용소 자연발생유원지는 경남 사천시 사남면 종천리 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40개의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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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족암 군립공원야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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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항포관광지
문수암(고성), 3.3km
주소 : 경상남도 고성군 상리면 무선2길 494
문의 : 055-672-8766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쌍계사의 말사인 문수암은 고성군상리면 무선리 무이산에 있는 암자로서 신라 성덕왕 5년(서기 706년) 의상조사가 창건했다. 창건 이후 이 암자는 수도 도량으로서 많은 고승들을 배출하였고, 산명이 수려하여 삼국시대부터 해동의명승지로 유명하였으며 특히 화랑도 전성시대에 국선 화랑들이 이 산에서 심신을 연마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중창 및 중건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현존하는 암자는 사라호 태풍때 건물이 붕괴된 뒤에 지은 현대식 건물이고, 일반 신도들의 성금으로 1973년에 이 절에서 수도한 이청담(李靑潭)의 사리를 봉안하여 세운 청담 대종사 사리탑이 있다. 석벽에는 문수(文殊), 보현(普賢) 두 보살상이 나타나 있으므로 문수단(文殊壇)이라 이름지었다. 문수보살(文殊菩薩)은 석각이고, 관세음보살상(觀世音菩薩像)은 두자 일곱치 크기의 목각으로 되어 있다. 기암절벽이 암자 뒷편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산정에 오르면 남해안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크고 작은 많은 섬들이 마치 군산봉처럼 부침하고 있는 절경을 조망할 수 있어 등산객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는 신라의 고찰이다. 인근에 수태산 보현사가 자리잡고 있으며 사천공항에서 버스편으로 30분 가량 소요 되고 문수암 입구까지 도로가 포장되어 승용차로 산 허리를 감고 돌아 문수암 조금 아래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10분 쯤 가면 문수암이 나타난다. 창건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하고 있다. 의상조사가 남해보광산(지금의 금산(錦山))으로 기도하러 가던 길에 상리면 무선리 어느 촌락에서 유숙하게 되었는데 비몽 사몽간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내일 아침에 걸인을 따라서 보광산보다 무이산을 먼저 가보라”고는 홀연히 사라져 잠을 깨니 꿈이었다. 날이 밝아 과연 한 걸인이 나타났는데, 급히 밥상을 갖다주며 무이산의 주소를 물었더니 무이산에 간다 하기에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 걸인을 따라 무이산 중턱에 오르니 눈앞에 수많은 섬들이 떠있고,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에 웅장한 다섯개의 바위가 오대(五臺)를 형성하고 있어 마치 오대산의 중대를 연상하게 하였다. 이때 그 걸인이 중대를 가리키며 "저곳이 내 침소다"라고 말하자 한 걸인이 또 나타나서 두 걸인은 서로 손을 잡으며 바위 틈새로 사라져버렸다. 의상조사는 석벽 사이를 살펴보았으나 걸인은 보이지 않았고, 이상하게도 석벽 사이에는 천연적인 문수보살상만이 나타나 있는 것을 보고 의상조사는 홀연히 깨달은 바, 꿈속의 노승이 관세음보살이고 두 걸인이 문수와 보현 보살임을 깨달았고 의상조사는 무이산을 두루 살펴보고는 “이곳은 족히 사자를 길들일 만한 곳이며 이곳 이야말로 산수 수도장이다” 라고 예찬하고 문수단을 모아서 문수암을 세우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는 데 지금도 석벽 사이에는 천연의 문수상이 뚜렸이 나타나 보인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쌍계사의 말사인 문수암은 고성군상리면 무선리 무이산에 있는 암자로서 신라 성덕왕 5년(서기 706년) 의상조사가 창건했다. 창건 이후 이 암자는 수도 도량으로서 많은 고승들을 배출하...
운흥사(경남), 3.5km
주소 : 경상남도 고성군 하이면 와룡2길 248-28
문의 : 055-835-8656
고성군 하이면 와룡산 향로봉(香爐峯)중턱에 위치한 천년고찰 운흥사(雲興寺)는 1,300여 년 전 신라 문무왕16년 (676년)의상조사가 창건한 신라고찰로서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13교구 본사인 쌍계사 50여 말사 중 산세와 규모가 비교적 큰 수 말사에 속하고, 임진왜란때 승병의 본거지로서 사명대사의 지휘아래 6,000여 명의 승병이 머물 정도로 규모가 컸으며,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수륙양면 작전 논의차 세 번이나 이 곳을 왕림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불가의 화원 양성소로 큰 역할을 했는데 조선시대의 불화 중 가장 많은 걸작품을 남기고 있는 『의겸(義謙)』 등이 나왔다. 그 당시 절의 규모는 현존하는 산내암자인 천진암과 낙서암을 비롯하여 아홉군데의 암자가 있었고 곳곳에 남아있는 절터와 대형 멧돌 그리고 전방 1km 떨어진 언덕에 고승들의 사리가 안장되어 있는 부도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상당한 규모였을 것으로 짐작되고, 임진왜란 때 병화로 소실된 것을 효종 2년(1651년)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경내에 남아있는 것이라곤 대웅전과 영산정, 요사채와 그 사이의 장독대가 전부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범종루(梵鍾樓), 산신각,요사채 등이 있고, 이 중 대웅전은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8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웅전 내에는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61호인 괘불(掛佛)과 조선 후기에 제작한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84호인 경판(經板) 등이 보관되어 있다. 대웅전 안에 모셔져 있는 삼존불상과 더불어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 `감로탱`인데 이는 조선 중기 이후에 불화를 잘 그리기로 이름난 의겸이 그린것으로 보아지며 당시 일반인들의 생활상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현재 보물로 지정된 괘불탱화를 비롯하여 대웅전, 영산전, 명부전 목조각상, 목제원패, 경판 등 30여점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임진왜란때 가장 많은 승군이 죽은 날로 기록되는 음력 2월 8일이면 국난극복을 위해 왜적과 싸우다가 숨진 호국영령들을 위한 영산제가 열린다. 운흥사에서 와룡산 정상쪽으로 300m쯤 오르면 운흥사의 부속암자인 천진암(天眞庵)에 이르고 여기서 200m쯤 오르면 낙서암(樂西庵)에 이르게 되는데, 낙서도인이 수도하였다는 낙서암은 물이 세다고 하고 이 물로 술을 빚으면 술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고성군 하이면 와룡산 향로봉(香爐峯)중턱에 위치한 천년고찰 운흥사(雲興寺)는 1,300여 년 전 신라 문무왕16년 (676년)의상조사가 창건한 신라고찰로서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13교구 본사인 쌍계사 50여 말사 중...
고성학림최영덕씨고가(매사고택), 4km
주소 : 경상남도 고성군 하일면 학동돌담길 55 (하일면)
문의 : 055-673-6904
세세지장토를 누릴 곳 고성 학림리 학동(鶴洞)은 17c 후반 전주 최씨 문성공 최아(崔阿)의 16세손이며 임란공신 의민공 최균(崔均)의 현손 최형태(亨泰)공이 하늘에서 학이 내려와 이 마을에 알을 품고 있는 꿈을 꾸었다. 날이 밝자 그길로 꿈에서 본 그곳에 가보니 과연 명당이라, 세세지장토를 누릴 수 있는 곳이라 믿고 동네 이름을 학동으로 부르고 이 마을에 입주, 개척하기 시작했다. 입향조 형태공의 5세손 성화(聖和) 최필간(必侃)공이 큰댁에서 분가하니 이분이 최씨고가의 중시조이다. 손자인 매사(梅史) 최태순(泰淳)공이 현재 규모의 주택으로 확장 개축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최씨고가는 전형적인 남부지역 사대부 가옥의 형식으로, 모든 건물은 일자형 평면이며, 안채, 서익랑채, 곳간채, 사랑채, 대문채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우진각 지붕)외 모두 팔작지붕건물이며, 사랑채 4귀에는 넓은 기둥이 설치되어 있다. 대문채는 맞배지붕의 솟을지붕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 중문 앞에 내외차단벽이 이채로우며, 사랑채-학림헌(鶴林軒)-은 당시 지방 수령-통영 통제사-이 있는 관아와 너무 멀어 민초들이 관청에 드나들기 힘든 시절 지방의 유력자인 최영덕(泳德)씨의 선조들에게 행정권을 위임해준 향소 역할을 했던 곳이다. 때문에 학림헌의 천정은 당시 관청의 그것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지대(축담)에는 손 씻는 돌세면대. 소피를 보는 돌거북 등이 있다. 후원 텃밭에 있는 井자 모양의 화강석 우물 뚜껑에 난 3개의 구멍은 천지인을 뜻하며 당시 석공의 솜씨를 자랑한다. 이 지역에서 출토되는 자연석(개석)으로 쌓여져 있는 담장은 주변의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마을 전체의 돌담길-학동마을 옛담장-은 등록문화재 제258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주최씨 집안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육영재(育英齋,경남문화재 제208호)를 만들어 일제때 신 교육기관이 생길 때가지 운영하여 많은 한학자를 배출하여 집안에 약 20여권의 문집(文集)이 나왔으며, 1910년 한일합방때 순국 자결한 우국지사 서비 최우순(西扉 崔宇淳)은 필간공의 종손자이며, 3대 국회의원 최갑환(甲煥), 최재구(載九,4선의원) 부자 등도 직계 증.고손이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세세지장토를 누릴 곳 고성 학림리 학동(鶴洞)은 17c 후반 전주 최씨 문성공 최아(崔阿)의 16세손이며 임란공신 의민공 최균(崔均)의 현손 최형태(亨泰)공이 하늘에서 학이 내려와 이 마을에 알을 품고 있는 꿈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