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왕산 옥천계곡
화왕산 옥천계곡은 경남 창녕군 창녕읍 말흘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인근에 가볼만한 관광지는 도성암, 석불사, 창녕포교당이 있고, 주변에 다른 캠핑장으로 화왕산 옥천계곡, 화왕산자연휴양림, 약수농원, 화왕산오토캠핑장, 옥천1382가 있습니다.
캠핑장 주요 정보
야영장 사이트 수 | 전화문의 | ||
편의시설 | 전화문의 | ||
동계캠핑 | 전화문의 | ||
반려동물 출입 | 전화문의 | ||
땅바닥형태 | 전화문의 | ||
지번주소 | 경남 창녕군 창녕읍 말흘리 화왕산옥천계곡 | ||
전화번호 | 055-530-2236 |
주변 관광지 3개
주변 캠핑장 5개
화왕산 옥천계곡은 경남 창녕군 창녕읍 말흘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화왕산자연휴양림은 경남 창녕군 고암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화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데크 사이트가 총 7개로 구성되어 있고,약수농원은 경남 창녕군 고암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파쇄석 사이트가 총 10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매점, 장작판매, Wi-Fi, 장비대여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화왕산오토캠핑장은 경남 창녕군 계성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옥천1382는 경남 창녕군 창녕읍에 위치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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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 단감 공원 캠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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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농원
도성암(창녕), 1.2km
주소 :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자하곡길 147
문의 : 055-533-2073
* 다시금 사찰 재건에 힘쓰고 있는 곳, 도성암 *화왕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2003년 9월 당시 한반도를 할퀴고 간 태풍 매미는 수많은 인명, 재산 피해와 함께 우리들의 가슴에도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안겨주고 떠났다. 더구나 수해와 산사태, 강풍으로 인한 각 사찰의 피해도 커 불교계가 합심해 복구에 박차를 가하는 결집된 힘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창녕 화왕산의 도성암은 재산피해와 더불어 흙더미가 요사채를 덮쳐 인명 사망피해까지 생겨 불자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불자들을 더욱 안타깝게 만든 것은 몇 개월 전 대구지하철 참사 사고로 읽은 두 딸의 명복을 빌기 위해 도성암을 찾은 어머니가 산사태로 목숨을 잃게 된 사연이었기 때문이었다. 태풍이 지나가고 한동안 도성암은 피해 복구가 어려울 정도로 매우 험한 상황이었으나 태풍에 대비한 수로를 건설하고 새로운 전각을 세워 신라고찰 도성암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도성암은 신라 현덕왕 2년(810)에 창건한 고찰로 임진왜란 때 전소되어 한 때 역사가 끊어진 사찰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도성암은 아미타부처님의 위신력에 기대어 창녕의 주산이자 절경으로 잘 알려진 화왕산 중턱에 자리하면서 현묘한 자성을 찾는 염불기도 영험도량으로 거듭나고 있다.도성암은 악몽을 딛고 여느 산사와 같은 평온을 되찾았다. 최근에는 보제루 불사를 마치고 단청불사 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또 얼마 전에는 대웅전의 석조여래좌상이 도유형문화재로 지정을 받게 되는 경사를 맞기도 했다. 비온 뒤 땅이 굳는다는 ‘케케묵은 진리’를 다시금 재확인하는 장면이다. 부디 앞으로의 도성암이 굳은 반석 위에서 튼실하게 정법을 수호하는 도량이 되길 바란다. * 도성암의 유래와 걸어온 길 *신라의 고승 지월선사가 810년(신라 현덕왕 2)에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것은 아니며 그후 오랫동안의 연혁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 없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전소되어 터만 남아 있다가 화왕산 자하골의 한 암자가 풍수지리가 나쁜 곳에 자리한 탓에 산 아래 주민들에게 각종 재난이 끊이지 않는다 하여 이를 막기 위해 재건립되었다 한다. 종각을 겸하고 있는 보제루 누각 아래의 계단을 지나면 경내 중앙에 대웅전이 있고, 대웅전 오른쪽에 칠성각으로 쓰였던 요사채, 그 옆 축대 위에 삼성각이 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다시금 사찰 재건에 힘쓰고 있는 곳, 도성암 *화왕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2003년 9월 당시 한반도를 할퀴고 간 태풍 매미는 수많은 인명, 재산 피...
석불사(창녕), 2km
주소 : 경남 창녕군 창녕읍 말흘리 산 11번지
문의 : 055-533-6695
석불사는 화왕산의 말미에 있다하여 유래된 마을 말흘리에 있다. 말흘리 인근에는 당제를 올렸다고 하여 지어진 신당마을과 남쪽의 낙영마을 등이 있다. 창녕읍내에 인근하고 있는 화왕산은 창녕군민들의 안식처와도 같은 곳으로 창녕 중학교와 등기소 뒤편을 지나는 화왕산 순환도로에서 석불사로 들어가는 산길이 있다. 계곡을 끼고 난 산길을 따라 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석불사는 산속에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읍내와 인근하고 있는 곳이다.번잡한 도로에서 산길로 접어들면서 자동차의 소음은 사라지고, 공기의 맑음이 느끼지는 곳으로 계곡과 울창한 나무들이 석불사 입구까지 이어져 있다. 낙동강과 밀양강이 둘러싸고 있는 경상남도 중북부에 우뚝 솟은 화왕산 중턱에 자리한 석불사(石佛寺)에는 신라 때 만들어진 석불이 봉안되어 있다. 요바골이었던 이 곳에 천 년의 세월동안 찾아오는 중생들의 괴로움을 말없이 들으며 위안을 주었던 미륵부처님은 비바람을 맞으며 노천에 홀로 계셨다. 노천에 홀로 계신 미륵부처님의 큰 공덕에 감복한 불제자들이 이곳에 가람을 세우고 법당에 모시면서 석불사라는 절을 창건하였다. 석불사에 모신 석불은 1000년의 세월을 요바우골을 지키며 있었으나, 가람은 1930년경에 세워졌다고 한다. 그전에는 사람들이 노천에 있는 석불을 찾아와 기도를 하였는데, 자식을 얻기 위해서 찾아오는 이들이 많았다. 자식을 얻기 위해 이 곳을 찾아 기도한 사람들은 모두가 아들을 얻게 되면서 득남기도도량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석불이 있다하여 석불사라 이름을 지은 이곳 화왕산은 창녕의 진산이다. 옛날 화왕산은 화산활동이 활발하여 불뫼, 큰불뫼로 불리기도 했는데,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낙동간 하류지역에 솟아 있어 실제보다 우뚝 솟아 보인다. 창녕의 진산인 화왕산 중턱 요바우골에 누가 무슨 연유로 석불을 조각하여 모셨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세상의 온갖 번뇌망상으로부터 자유로운 부처님의 뜻을 따르고자한 마음을 담고 있었을 것이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석불사는 화왕산의 말미에 있다하여 유래된 마을 말흘리에 있다. 말흘리 인근에는 당제를 올렸다고 하여 지어진 신당마을과 남쪽의 낙영마을 등이 있다. 창녕읍내에 인근하고 있는 화왕산은 창녕군민들의 안식...
창녕포교당, 2km
주소 :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신당2길 4-3
문의 : 055-533-2295
*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곳, 창녕포교당 *화왕산의 억새와 관룡사로 유명한 경남 창녕은 예부터 비화가야(非火伽倻), 즉 비사벌이라 불려지던 문화의 고장으로 각종 문화재가 많아 제2의 경주라 불린다. 일찍이 삼국시대 이전부터 낙동강 이동(以東)에 아름다운 가야문화를 창조해온 창녕은 부처님의 법화도 함께 이어져 내려온 유서 깊은 고장이다.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진 전통사찰인 통도사 창녕포교당은 불법을 수호하고 포교의 일선에서 매진하고 있는 창녕의 명찰 중 하나이다.비록 포교당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절집이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창녕포교당은 적멸보궁을 조성하고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셨으며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조선시대 목조석가여래가 안치되어 있는 사찰이다. 또한 창녕포교당이 자리한 곳은 신라시대 거찰로 알려졌던 인왕사(仁旺寺)가 있었던 곳이라고 하니 창녕포교당은 포교당 이상의 조건과 역할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겠다. 실제로 창녕포교당은 기도처와 포교의 방편 외에도 관내 독거노인돕기 활동을 매일 펼쳐나가는 등 지역사회 내에서도 기여하는 사찰로 정평이 나있다. 비화가야의 넓은 들판 속 인왕사터에 자리한 창녕포교당은 불국정토를 만들기 위한 염원이 불보살의 뜻과 닿아있으리라 믿어본다. * 창녕포교당의 창건배경 및 역사 *통도사창녕포교당의 창건에 대한 기록은 요사채 문설주 위에 죽 걸려있는 현판 가운데 '불찰통도사본말사창녕포교당창건대시주공덕기'에 나와 있다. 이를 살펴보면 불기 2966년(1939) 7월 7일에 포교사 춘담(春潭)스님께서 인왕경(仁旺經)을 교화하기 위하여 당시 창녕지역의 대지주였던 하준석(河駿錫, 당시 곤양, 현풍, 비안군수를 지냈던 통정대부 하재구의 2남이자 진양 하씨 30세손)의 슬하에 자녀가 귀하여 득남원(得男願)을 발원하여 세운 절이라고 나와 있다. 당시 창녕포교당에 처음 주석했던 춘담tm님은 사찰을 준공한 후의 심정을 노래한 송(頌)에서 창건 불사가 얼마나 어려웠음인지 이렇게 적고 있다. 建立何歲月:어느 세월에 다 지으랴! 龜毛爲棟樑:거북의 털로써 기둥을 세우랴!經營空劫前:세월이 다 가기 전에 운영이나 해볼까 兎角作柱椽:토끼 뿔로 기둥 서까래를 삼을까나 또 ‘창녕지명사’에 전하는 창녕읍 신당마을 유래에 대해 '창녕여고와 포교당(仁旺寺)이 있는 일대로 말흘리의 동북부에 위치한다'라고 적고 있으며 창녕군의 전통사찰현황에 창녕포교당은 1920년도 창건하였는데 “신라시대 창녕읍 술정리에 ‘인왕사’라는 포교당 전신인 대사찰이 있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자 동산선사가 옛 인왕산사를 재현한 포교당을 지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절에 초창시부터 지극정성으로 다니고 있는 법왕자(法王子, 85세, 신당리 거주)보살의 증언에 의하면 곤양군수를 지낸 만석군의 모친인 김선명화(金善明華)보살과 아들 내외인 하준석(河駿錫), 서공덕화(徐功德華)보살이이 아들을 낳기 위해 원불로 지어졌다는 것이다. 또한 그의 아들 영달(永達)이 범종을 시주하였다는데 지금도 적멸보궁에 ‘하영달’이라는 명문이 있는 당시의 범종이 남아 있다. 따라서 창녕포교당은 1939년 창건이 확실해 보인다. 이후 1978년 청운스님(현 밀양 표충사 주지)이 주석할 당시 6.25때 화마를 입은 관룡사 팔상전에 모셨던 목조석가여래좌상을 이운해 왔는데 현재 도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이후 적멸보궁에 봉안해 놓았다. 이후 설법전 등의 요사채와 석가모니입상 등을 조성해 놓았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곳, 창녕포교당 *화왕산의 억새와 관룡사로 유명한 경남 창녕은 예부터 비화가야(非火伽倻), 즉 비사벌이라 불려지던 문화의 고장으로 각종 문화재가 많아 제2의 경주라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