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장 상세 정보
* 땅바닥 형태
잔디 | 데크 | 파쇄석 | 맨흙 | 기타 |
* 이용조건
화로대사용 | 동계캠핑 | 반려동물출입 |
* 편의시설
전기 | 온수 | 샤워실 | 매점 | 장작판매 |
온수샤워 | WiFi | 장비대여 | 수영장 | 운동장 |
* 주변시설
낚시 | 해수욕장 | 계곡 | 산책로 | 강 |
호수 |
* 숙박시설
카라반 | 팬션 | 방갈로 | 글램핑 |
경주 남산가족쉼터캠핑장은 경북 경주시 배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맨흙 사이트가 총 48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매점, 장작판매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인근에 가볼만한 관광지는 경주 남산동 동ㆍ서 삼층석탑, 염불사지, 경주 서출지가 있고, 주변에 다른 캠핑장으로 초우관광농원, 경주 초우펜션&오토캠핑장, 동방 캠핑하우스, 경주 남산포석농원, 펜션600 캠핑장이 있습니다.
야영장 사이트 수 | 48개 | ||
편의시설 | 전기, 온수,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매점, 장작판매 | ||
동계캠핑 | 불가능 | ||
반려동물 출입 | 불가능 | ||
땅바닥형태 | 맨흙 | ||
지번주소 | 경북 경주시 배동 460-1 | ||
전화번호 | 전화번호 보기 |
잔디 | 데크 | 파쇄석 | 맨흙 | 기타 |
화로대사용 | 동계캠핑 | 반려동물출입 |
전기 | 온수 | 샤워실 | 매점 | 장작판매 |
온수샤워 | WiFi | 장비대여 | 수영장 | 운동장 |
낚시 | 해수욕장 | 계곡 | 산책로 | 강 |
호수 |
카라반 | 팬션 | 방갈로 | 글램핑 |
초우관광농원은 경북 경주시 동방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53개의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온수, 화장실, 샤워실, 매점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경주 초우펜션&오토캠핑장은 경북 경주시 동방동 309-7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57개의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매점 등의 편의시설과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동방 캠핑하우스는 경북 경주시 동방동 758-4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기, 온수,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매점, 장작판매 등의 편의시설과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경주 남산포석농원은 경북 경주시 배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데크, 파쇄석 사이트가 총 23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장작판매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펜션600 캠핑장은 경북 경주시 장골길에 위치하고 있으며 온라인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전기, 온수, 매점, 장작판매, Wi-Fi 등의 편의시설과 운동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경주 남산동 동ㆍ서 삼층석탑, 337m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새남산길 62 (남산동)
남산사지의 쌍탑중 동탑은 모전석탑(模塼石塔)이고 서탑은 일반형 석탑이다. 동탑은 넓은 2중의 지대석 위에 팔개의 석괴로서 기단부를 이루고 있다. 각층의 탑신과 옥개석은 일개의 석재로 되어 있으며 표면에 조식(彫飾)이 없다. 탑신부의 중적수법(重積手法)은 일반형 석탑과 다름없이 옥개석과 탑신은 층층이 체감의 비율을 보이고 옥개석 받침은 초층부터 5단, 5단, 4단으로 되어 있다. 상륜부는 노반만 남아있고 나머지는 결실되었다. 이에 대한 서탑은 이중기단 위에 삼층석탑을 세웠다. 하대석과 하층기단면석을 일석으로 만들어 서석으로 구성하고 서석에는 각면(各面) 이주식(二柱式)의 당주를 표시하고 있다. 하대갑석은 대소사석(大小 四石)으로 상층기단서석을 받고 있으며 면석의 각면은 당주로서 이구로 나누고 각구 안에 팔부중상(八部衆像) 일구식(一軀式)을 양각하였다. 상대갑석은 이매(二枚)의 판석으로 되어 있으며 상면에 이단의 받침이 있어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석이 각각 일매석으로 되어 있고 각층마다 체감의 비율이 되어 있으며 탑신은 각층마다 우주형이 표시되어 있다. 옥개석은 처마 끝이 직선을 이루었고 옥개 받침은 각층 5단이며 그 주위로 구조가 돌려 있다. 상륜부는 노반만 남아있고 나머지는 결실되었다. 이 양탑의 건립연대는 그 양식으로 보아 9세기경으로 추정되며 이 곳 절 이름은 알 수 없다. * 연혁(유래)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형식을 달리하는 두 탑이 동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높이는 동탑이 7.04m, 서탑이 5.85m로 차이가 있다. 동탑은 3층인데,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模塼石塔) 양식으로, 바닥돌 위에 돌덩이 여덟 개로 어긋물리게 기단을 쌓고 층마다 몸체돌 하나에 지붕돌 하나씩을 얹었다. 지붕돌은 벽돌을 쌓아 만든 것처럼 처마밑과 지붕 위의 받침이 각각 5단이다. 서탑은 이중 기단 위에 3층으로 몸돌을 쌓은 일반형이다. 윗기단의 몸체에 팔부중상을 돋을새김한 것이 독특하다. 팔부신중은 신라 중대 이후에 등장하는 것으로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탑을 부처님의 세계인 수미산으로 나타내려는 신앙의 한 표현이다. * 시대 - 통일신라시대 * 수량 - 2기
출처 : 한국관광공사남산사지의 쌍탑중 동탑은 모전석탑(模塼石塔)이고 서탑은 일반형 석탑이다. 동탑은 넓은 2중의 지대석 위에 팔개의 석괴로서 기단부를 이루고 있다. 각층의 탑신과 옥개석은 일개의 석재로 되어 있으며 표면...
염불사지, 385m
주소 : 경북 경주시 남산동
경주 남산동에 있는 안말이라는 곳은 내촌(內村) 또는 내촌리(內村里)라고 불린다. 이곳을 또 피리사촌(避里寺村), 피리촌, 피이촌(避伊村)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미루어 여기가 바로 신라 시대의 사찰인 피리사(避里寺)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남산 동쪽 산기슭에 피리촌이 있었는데 그 곳의 절을 피리사라 하였다. 그 절에는 이상한 중이 있었는데, 늘 아미타불을 외었다. 그 소리가 성 안에까지 들렸는데, 누구 하나 그 소리를 듣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소리가 높고 낮음이 없이 낭랑하기가 한결 같았기에, 사람들은 모두가 그를 공경하여 염불사(念佛師)라 불렀다. 그가 죽은 뒤에 소상(塑像)을 만들어 민장사(敏藏寺) 안에 모시고, 그가 본디 살던 피리사를 염불사(念佛寺)로 고쳤다'고 한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안말에 염불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사찰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경주 남산동에 있는 안말이라는 곳은 내촌(內村) 또는 내촌리(內村里)라고 불린다. 이곳을 또 피리사촌(避里寺村), 피리촌, 피이촌(避伊村)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미루어 여기가 바로 신라 시대의 사찰인 피리사(...
경주 서출지, 571m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1길 17 (남산동)
신라 21대 소지왕이 서기 488년 정월 보름날 행차에 나설 때다.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말했다. "이 까마귀 가는 곳을 살피십시오" 왕은 장수를 시켜 따라가게 했다. 동남산 양피촌 못가에 이르러 장수는 그만 까마귀를 놓쳐 버렸다. 이때 갑자기 못 가운데서 풀옷을 입은 한 노인이 봉투를 들고 나타났다. "장수께서는 이 글을 왕에게 전하시오" 노인은 글이 써진 봉투를 건넨 뒤 물 속으로 사라졌다. 왕이 봉투를 받아보자 '열어보면 두사람이 죽고 보지 않으면 한사람이 죽는다' 라고 적혀있었다. 이를 본 신하가 말했다. "두사람은 평민이고 한사람은 왕을 가리킴이오니 열어보시는 것이 어떨까 하옵니다." 왕은 신하의 조언에 따라 봉투를 뜯었다. '사금갑(射琴匣)' 즉 '거문고 갑을 쏘아라' 라고 적혀 있었다. 대궐로 간 왕은 왕비의 침실에 세워둔 거문고 갑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거문고갑 속에는 왕실에서 불공을 보살피는 승려가 죽어있었다. 승려는 왕비와 짜고 소지왕을 해치려한 것이었다. 왕비는 곧 사형되었으며 왕은 노인이 건네준 봉투 덕분에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이 연못은 글이 적힌 봉투가 나온 곳이라 해서 서출지라 부른다. 소지왕 10년은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기 40년 전이다. 신라 눌지왕 시대에 묵호자가 불교를 전하러 왔으나 펴지 못했다. 소지왕 시대 아도 스님 역시 불교전파에 실패했다. 법흥왕 15년 이차돈의 순교로 비로소 신라에 불교가 공인된 것이다. 당시 신라 귀족들은 민속신앙 특히 조상을 섬기는 신앙이 강해 쉽게 불교를 인정하지 않았다. 서출지의 전설은 전통적 민속신앙속에 새로운 불교문화가 전래되는 과정에 빚어지는 갈등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수량 7,021㎡
출처 : 한국관광공사신라 21대 소지왕이 서기 488년 정월 보름날 행차에 나설 때다.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말했다. "이 까마귀 가는 곳을 살피십시오" 왕은 장수를 시켜 따라가게 했다. 동남산 양피촌 못가에 이르러 장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