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장 상세 정보
* 땅바닥 형태(전화문의)
잔디 | 데크 | 파쇄석 | 맨흙 | 기타 |
* 이용조건
화로대사용 | 동계캠핑 | 반려동물출입 |
* 편의시설
전기 | 온수 | 샤워실 | 매점 | 장작판매 |
온수샤워 | WiFi | 장비대여 | 수영장 | 운동장 |
* 주변시설
낚시 | 해수욕장 | 계곡 | 산책로 | 강 |
호수 |
* 숙박시설
카라반 | 팬션 | 방갈로 | 글램핑 |
일지매 침벽 캠핑장은 경북 영양군 영양읍 감천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50개의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장작판매 등의 편의시설과 운동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인근에 가볼만한 관광지는 영양군, 영양 두들마을, 두들마을이 있고, 주변에 다른 캠핑장으로 일월산 한우네캠핑장이 있습니다.
야영장 사이트 수 | 50개 | ||
편의시설 | 전기, 온수,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장작판매 | ||
동계캠핑 | 불가능 | ||
반려동물 출입 | 불가능 | ||
땅바닥형태 | 전화문의 | ||
지번주소 | 경북 영양군 영양읍 감천리 686 | ||
전화번호 | 전화번호 보기 |
잔디 | 데크 | 파쇄석 | 맨흙 | 기타 |
화로대사용 | 동계캠핑 | 반려동물출입 |
전기 | 온수 | 샤워실 | 매점 | 장작판매 |
온수샤워 | WiFi | 장비대여 | 수영장 | 운동장 |
낚시 | 해수욕장 | 계곡 | 산책로 | 강 |
호수 |
카라반 | 팬션 | 방갈로 | 글램핑 |
일월산 한우네캠핑장은 경북 영양군 영양읍 동부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11개의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장작판매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영양군, 4.8km
주소 : 경북 영양군
문의 : 054-682-2241
경상북도 북동부에 위치해 있다. 동쪽은 영덕군과 울진군, 서쪽은 안동시, 남쪽은 청송군, 북쪽은 봉화군과 울진군에 접하고 있다. 전체 면적은 815.08㎢ 이며 총 인구는 18,352명(2012년 3월말 기준)이다. 1읍 5면 1개출장소 114개 법정리로 되어 있으며 군청소재지는 영양읍 서부리이다. * 자연환경 태백산맥의 높은 산지로 둘러싸여 분지상으로 발달하였으며, 전반적인 해발고도가 경상북도에서 가장 높다. 군의 동부와 서부에는 백암산, 일월산 등 해발 1,000m 이상의 높은 산지를 비롯해서 검마산, 수양산, 작약봉, 주령, 행곡령, 홍림산 높은 산지가 분포하고 있다. 일월산에서 동부, 서부, 중부지맥이 뻗어나오며, 동부지맥과 중부지맥 사이에 북반변천이 흐르고 서부지맥에서 발원한 동천이 중부지맥과의 사이에 흘러 군의 남부에서 반변천과 합류하며, 일월산 동쪽에서 발원한 장군천이 도계리에서 반변천에 합류한다. * 역사 고대 - 신라시대 때 고은현으로 불리웠고 757년(경덕왕16) 유린현(영해)의 영현이 되었는데, 오늘날 영양군의 행정구역인 청기면, 영양읍일대는 명주에, 일월면, 수비면 일대는 양주에 분할, 소속되어 있었다. 또 현재의 청기면 일대에 위치하였던 청기현도 고은현과 함께 유린현에 소속되어 있었다. 고려 - 고은현은 940년(태조23) 영양군으로 개명되어, 청기현과 함께 1018년(현종 9) 예주의 속읍이 되어 고려시대 말까지 존속되었다. 조선 - 조선전기 영해부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1675년(숙종1) 조책 등의 상소에 의하여 독립, 분리되었으나, 1676년(숙종2) 다시 영해부에 환속되었다. 1677년(숙종 2) 남시하의 상소를 계기로 독립은 허락되지 않고, 행정 편의와 민폐 제거를 위하여 영양현을 진보현과 영해부에 나누어 소속시켰다. 1682년(숙종8) 남시직의 상소에 의하여 마침내 청기현과 합하여 독립현이 설치되어 독립행정 단위를 구성하게 되었는데, 석보면은 계속 영해부에 속하였다. 근대 - 1895년 영양군으로 승격되어 안동부에 속하였고 1896년 경상북도 영양군이 되었다. 1914년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대 - 8.15 해방 후 대규모의 행정구역 개편은 없었고, 지역 분할만이 약간 이루어지다가 1979년 영양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 문화 민속 - 원놀음은 농한기인 정월 초순에 행해지던 놀이인데, 조선시대의 하위 관장인 원을 무대로 일어났던 일들을 극화하여 놀이화한 것이다. 놀이의 순서는 먼저 육방관속과 백성들이 원님에게 신년하례를 한 뒤 원님이 마을 사람들의 위법 사실을 묻고 범법자를 추궁하는 것으로 행해진다. 대사의 내용은 지방 수령이 전제하는 행정, 군사, 사법, 조례, 부역 등에서 고루 채택되는데 즉흥적인 것도 많고 기지가 있어 사회 비판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다. 동제 - 마을 단위로 마을 수호신인 서낭을 섬긴다. 일월산, 검마산, 울렬산, 작약봉, 읍령, 장갈령 등지의 서낭당이 유명하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경상북도 북동부에 위치해 있다. 동쪽은 영덕군과 울진군, 서쪽은 안동시, 남쪽은 청송군, 북쪽은 봉화군과 울진군에 접하고 있다. 전체 면적은 815.08㎢ 이며 총 인구는 18,352명(2012년 3월말 기준)이다. 1읍 5면 1개...
영양 두들마을, 8.5km
주소 : 경북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
두들마을은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에 있는 마을이다. 총 440여호에 1,000여명이 살고 있으며, 1640년 (인조 18년)에 석계 이시명 선생이 병자호란의 국치를 부끄럽게 여겨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그후 이시명 선생은 1674년 안동으로 옮겨 갔으나, 그의 사후 넷째아들인 이숭일이 다시 고향인 이곳에 돌아와 살게 되었고 후손들이 계속 더해져 재령이씨의 집성촌 마을이 되었다. 조선 고종때 국립병원인 광제원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원두들'이라 불리웠다가, '원리리'로 변경 되었다고 한다.마을옆 둔덕에 석계 이시명 선생이 지은 석천서당과 석계고택이 남아 있고, 마을앞을 흐르는 화매천가에는 이시명 선생의 넷째아들인 이숭일이 새겼다고하는 동대, 서대, 낙기대, 세심대 등의 글씨가 새겨진 암석들이 남아 있다. 두들마을에는 30여채의 전통가옥이 남아 있는데, 두들문화마을전시관 뒤쪽으로 위치한 석계 고택은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640년에 이시명이 이곳에 입향하면서 세운 고택이다. 이숭일이 모친인 정부인 안동장씨를 모시고 고향인 이곳에 돌아와 중수하였고, 당호를 항재라 하였다. 석계고택의 오른쪽으로 유우당이 있다. 유우당은 1833년(순조 33년)에 이상도가 주남리에 세운 집으로 후손인 이돈호가 이곳으로 옮겨 지었다. 항일시인 이병각의 집이기도 한 유우당은 경상북도 민속자료 285호로 지정되어 있다. 두들마을에서 인지천을 따라 오르면 폐교가된 주남초등학교를 지나게 되는데 여기에서 조금만 더 가면 남악정을 만나게 된다. 갈암 이현일 선생이 후학을 양성하던 곳으로 1674년(현종 15년)에 지어진 정자로,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80호로 지정되어 있고, 갈암선생의 문집 목판이 보관되어 있다. 이외에 경상북도 북부지역에서 가장 넓은 땅을 가졌었다는 만석꾼댁, 주곡고택, 광록초당, 석촌서당 등도 둘러 보면 좋다.두들마을은 소설가 이문열의 고향이기도 하다. 석계고택의 뒷쪽으로 광산문학연구소가 있는데, 세미나등 다양한 문학 관련 행사가 열리기도 하며, 이문열의 집필실로 사용되고 있는 곳이다. 두들마을에서 또하나 빠뜨릴수 없는 것은 바로 이곳의 입향조인 이시명 선생의 부인인 정부인 장씨가 최초의 한글요리책인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의 저자라는 점이다. '음식디미방'이란 '좋은 음식맛을 내는 방문'이란 뜻으로 정부인 장씨가 일흔이 넘어서 1600년대의 경상도 양반가의 음식 조리법과, 저장, 발효 식품 등 146가지의 음식 조리법을 소개하고 있는 요리책이다.두들마을에서는 정부인 장씨예절관과, 전통음식 체험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실제 '음식디미방'에 나오는 조리법대로 약 40여가지의 음식을 복원하여 상차림을 내고 있다. 채소와 해산물을 주재료로 찌거나 구워 재료 고유의 향과 맛이 살아 있는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두들마을은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에 있는 마을이다. 총 440여호에 1,000여명이 살고 있으며, 1640년 (인조 18년)에 석계 이시명 선생이 병자호란의 국치를 부끄럽게 여겨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
두들마을, 8.5km
주소 : 경북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
행정구역상으로는 경북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 이곳 두들마을은 '언덕 위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1640년 석계 이시명 선생이 병자호란을 피해서 들어와 개척한 이후, 그의 후손인 재령 이씨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왔다. 조선시대 1899년에는 이곳에 국립 병원격인 광제원이 있었다 하여, '원두들, 원리'라 부르기도 한다. 마을에는 석계 선생이 살았던 석계고택과 석계 선생이 학생들을 가르쳤던 석천서당을 포함하여 전통가옥 30여채를 비롯하여 한글 최초의 조리서 '음식디미방'을 쓴 정부인 장씨를 기리는 안동 장씨 유적비, 이문열이 세운 광산문학연구소 등이 있다. 마을 앞을 흐르는 화매천을 둘러친 절벽 바위에는 석계 선생의 넷째 아들인 이숭일이 새겨 놓은 동대, 서대, 낙기대, 세심대 등 유묵도 뚜렷하게 보인다. 1994년 정부로부터 문화마을로 지정되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행정구역상으로는 경북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 이곳 두들마을은 '언덕 위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1640년 석계 이시명 선생이 병자호란을 피해서 들어와 개척한 이후, 그의 후손인 재령 이씨들이 집성촌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