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장 상세 정보
* 땅바닥 형태(전화문의)
잔디 | 데크 | 파쇄석 | 맨흙 | 기타 |
* 이용조건
화로대사용 | 동계캠핑 | 반려동물출입 |
* 편의시설
전기 | 온수 | 샤워실 | 매점 | 장작판매 |
온수샤워 | WiFi | 장비대여 | 수영장 | 운동장 |
* 주변시설
낚시 | 해수욕장 | 계곡 | 산책로 | 강 |
호수 |
* 숙박시설
카라반 | 팬션 | 방갈로 | 글램핑 |
칠곡 신선대 오지캠핑장은 경북 칠곡군 북삼읍 보손리 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17개의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전기,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인근에 가볼만한 관광지는 영명사, 선봉사,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이 있고, 주변에 다른 캠핑장으로 대성 글램핑장, 대성글램핑, 월명612, 금오산 야영장, 허브하우스 금오산 힐링타운이 있습니다.
야영장 사이트 수 | 17개 | ||
편의시설 | 전기,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 ||
동계캠핑 | 불가능 | ||
반려동물 출입 | 불가능 | ||
땅바닥형태 | 전화문의 | ||
지번주소 | 경북 칠곡군 북삼읍 보손리 칠곡 신선대 오지캠핑장 | ||
전화번호 | 전화번호 보기 | ||
홈페이지 | 홈페이지로 이동 |
잔디 | 데크 | 파쇄석 | 맨흙 | 기타 |
화로대사용 | 동계캠핑 | 반려동물출입 |
전기 | 온수 | 샤워실 | 매점 | 장작판매 |
온수샤워 | WiFi | 장비대여 | 수영장 | 운동장 |
낚시 | 해수욕장 | 계곡 | 산책로 | 강 |
호수 |
카라반 | 팬션 | 방갈로 | 글램핑 |
대성 글램핑장은 경북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기, 온수,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장작판매, Wi-Fi 등의 편의시설과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대성글램핑은 경북 칠곡군 북삼읍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기, 온수, 장작판매, Wi-Fi, 장비대여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월명612는 경북 김천시 남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금오산 야영장은 경북 구미시 남통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116개의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허브하우스 금오산 힐링타운은 경북 김천시 남면 오봉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기, 온수,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매점 등의 편의시설과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영명사(칠곡), 1.7km
주소 :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금오동천로 84 (북삼읍)
문의 : 054-973-1842
* 득남기도처로 유명한 사찰, 영명사 * 금오산 야트막한 터에 자리한 영명사는 한 개인의 이와 같은 발복의 의미로 세워진 사찰이다. 발복이란 예부터 우리네 어머니들이 머리와 등에 공양물을 이고 져서 산 중 험한 길을 마다 않고 오로지 자식 잘되길 빌기 위해 절을 찾아들어 소원을 빌었던 것을 의미한다. 즉, 발로 복을 얻는다는 의미이다. 1926년 창건한 영명사는 1935년 대웅전을 중수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고 요사 2동은 그 이후에 지었다. 현재 영명사는 이명렬 보살의 외손 명의로 되어 있어 운영과 불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직은 초라한 인법당의 모습이지만 큰 욕심 내지 않고 조용한 수행 기도처로서 영명사의 제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 나가고 있다. * 영명사의 창건배경 및 설화 * 영명사는 1926년 인근에서 주막집을 하면서 어려운 이들을 돕고 신심있던 불자로 소문났던 이명렬(李明烈) 보살이 아들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 창건, 스님을 시봉하며 여기에서 평생을 살았다. 그러나 그 보살의 뜻과 달리 결국 득남을 하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게 됐으나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의 영명사는 득남기도처로 유명해져 있다. 아무래도 영명사는 창건주의 발원이 부처님의 가피가 되어 득남 영험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득남기도처로 유명한 사찰, 영명사 * 금오산 야트막한 터에 자리한 영명사는 한 개인의 이와 같은 발복의 의미로 세워진 사찰이다. 발복이란 예부터 우리네 어머니들이 머리와 등에 공양물을 이고 져서 산 중 ...
선봉사(칠곡), 4km
주소 : 경북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 산 1번지
문의 : 054-972-4278
선봉사(僊鳳寺)는 경북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 산 1번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재단법인 선학원 소속 사찰이다. “봉미산 신륵사는 나옹화상 토굴이요, 낙산사 의상대는 의상스님 토굴이요, 남숭산 선봉사는 대각국사 토굴이요….” 구전되어 오는 옛 노래 속에 도인들의 수도장을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대부분 잘 알려진 사찰과 명산이나 남숭산 선봉사는 조금 생소하다. 여기서 남숭산은 구미 지역에 자리한 금오산을 말한다. 금오산은 고려 때 ‘남숭산(南嵩山)’이라 했는데 중국 오악 중 하나인 유명한 숭산과 생김새가 흡사하여 숭산이라 명명하게 됐다. 그래서 남쪽에 있다 해서 남숭산이라 하고 황해도 해주에 북숭산을 두게 되어 남북에 숭산이 하나씩 있게끔 했다. 이러한 영산의 기운이 감도는 남숭산에 대각국사와 그의 제자들의 수도장이었을 만큼 명당이었다고 한다. ‘봉황(鳳)이 훨훨 춤춘다(僊)'는 뜻의 선봉사는 곧 '도인(道人)이 해탈했다'는 뜻이니 사명에서 도인들의 수행처임을 짐작할 수 있다. 사찰의 창건에 대한 기록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에 이 자리에 선봉사가 있었다는 사실은 신라시대에도 사찰터였으리라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또, 왕의 아들인 대각국사가 입적하자 국가적인 사업으로 대각국사비를 이 자리에 세운 것은 선봉사가 그만큼 길지였음을 다시 한번 말해주고 있다. 보물 251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는 선봉사대각국사비는 선봉사가 이 비석 하나만으로 과거 대찰이었으며 선승들의 이름난 수행처임을 반증하는 소중한 성보이다. 임진왜란 이후 사찰이 완전 소실되고 폐사되어 버려 역사에서 사라질 뻔한 선봉사가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것도 역시 땅 속에 묻혀 있던 비석이 세상의 빛을 다시 보게 됨으로 인해서였다. 이 곳에 오르는 신도들 역시 법당 보다 대각국사비에 치성을 드리거나 기도를 하는 일이 많다고 하니 이 비석이 선봉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길이 제대로 나있지 않아 승용차로도 오르기 힘든 곳에 선봉사가 자리하고 있지만 대각국사비 하나 만으로도 찾아갈 가치가 충분한 사찰이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선봉사(僊鳳寺)는 경북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 산 1번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재단법인 선학원 소속 사찰이다. “봉미산 신륵사는 나옹화상 토굴이요, 낙산사 의상대는 의상스님 토굴이요, 남숭산 선봉사는 대각국...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4.4km
주소 : 경북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산8번지
* 조선조 왕자들의 태실, 세종대왕 왕자 태실 *조선조 세종대왕 왕자들의 태실로서 전열은 11기, 후열은 8기로 되어있다. 태실 앞에는 각각 왕자의 태실비가 세워져 있는데, 대부분 세종 20년(1438)에서부터 세종 24년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에는 비석이 닳아 판독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으며, 판독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은 평원대군, 영응대군, 의창군 등의 태실비이다. 그러나 1977년 12월, 이곳을 보수, 정비하면서 금성대군, 화의군, 단종 등의 태실로 추정되는 자리에서 토기, 태호, 분청인화문 대접, 분청상감 연화문 뚜껑 1식과, 명기가 있는 지석2점 등이 출토되어 현재 국립대구박물관, 경주박물관, 경북대학교 박물관 등에 보관되어 있다. 한편 가까이엔 이곳 태실을 수호하는 사찰이었던 선석사가 있다. * 태실과 지석의 구조에 대하여 *태실은 왕실에서 자손을 출산하면 그 태를 봉안하는 곳을 말한다. 예로부터 태는 태아의 생명력을 부여한 것이라고 인정하여 태아가 출산된 뒤에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다루었다. 민간에서는 땅에 묻는 경우도 있었으나 많은 경우 출산 후 마당을 깨끗이 한 뒤 왕겨에 태를 묻어 몽긋몽긋하에 태운 뒤에 재를 강물에 띄워 보내는 방법으로 처리하였다. 그러나 왕족의 경우에는 국운과 직접 관련이 있다고 여겨 태를 항아리에 담아 전국의 명당에 안치시키는 방법으로 처리하였다. 이때 이를 주관하는 관상감에서 길지로 선정된 명산에 일정한 의식과 절차를 밟아 묻었는데, 이 의식과 절차를 거쳐 완성한 시설을 태실이라 불렀다. 또한 태봉은 태실 가운데 그 태의 주인이 왕으로 즉위할 경우에 격에 맞는 석물을 갖추고 가봉비를 세운 것으로 임금의 태실을 말한다.19기의 태실은 화강암으로 깎은 조선태실 의궤(儀軌) 형식으로 지하에 석실을 만들고 그 안에 백자로 된 태호(胎壺)를 넣는 형태이다. 태호 속에는 태항(胎缸)과 태주(胎主)의 이름 및 생년월일을 음각한 지석(誌石)을 두었다. 지상에는 기단, 간석, 옥개의 형식을 갖춘 석조물을 안치하는 한편 각왕자의 태실을 가리키는 표석을 세웠다. 태실의 옥개 높이는 25㎝, 지름 1.6m, 둘레 3.2m이며 신석은 높이 60㎝, 지름 1.2m, 둘레 2.4m이다. 기단은 높이 45㎝, 지름 2.2m, 둘레 8.8m이고 태비의 높이는 90㎝, 너비는 35㎝이다. * 태실 수호사찰 선석사 *- 신라 효소왕 1년(692)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 조선초기 세종대왕 자태실이 조성되면서 수호사찰이 되었음- 소장 문화재 : 성주선석사영산회괘불탱(보물 제 1608호) / 선석사대웅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 113호)- 태장전 : 현대인의 아기 태를 봉안하는 시설이 있으며, 태 봉안인의 무병/장수를 기도하는 도량[문화재 정보]* 조성연대 : 1438년(세종 20)~1442(세종 24) * 재질 : 화강암 * 크기 : 면적 5,950㎡* 태실수 : 19기- 세종대왕의 적서 18왕자 중 장자 문종을 제외한 17왕자 태실 18기- 세종대왕의 손자 단종이 태어났을 떄 조성한 태실 1기※ 단종의 태실은 세자로 책봉된 후 성주 법림산에 새롭게 이전 조성함* 문화재적 가치- 태실이 군집을 이룬 전국 최대의 태실 문화유산- 조선초기 태실문화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최선의 문화유산- 태실 조성방식의 시대적 변천을 확인 할 수 있는 최고의 문화유산
출처 : 한국관광공사* 조선조 왕자들의 태실, 세종대왕 왕자 태실 *조선조 세종대왕 왕자들의 태실로서 전열은 11기, 후열은 8기로 되어있다. 태실 앞에는 각각 왕자의 태실비가 세워져 있는데, 대부분 세종 20년(1438)에서부터 세종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