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장 상세 정보
* 땅바닥 형태
잔디 | 데크 | 파쇄석 | 맨흙 | 기타 |
* 이용조건
화로대사용 | 동계캠핑 | 반려동물출입 |
* 편의시설
전기 | 온수 | 샤워실 | 매점 | 장작판매 |
온수샤워 | WiFi | 장비대여 | 수영장 | 운동장 |
* 주변시설
낚시 | 해수욕장 | 계곡 | 산책로 | 강 |
호수 |
* 숙박시설
카라반 | 팬션 | 방갈로 | 글램핑 |
순천 국민여가캠핑장은 전남 순천시 서면 운평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데크, 파쇄석 사이트가 총 29개로 구성되어 있고,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인근에 가볼만한 관광지는 정혜사, 향림사, 광양 형제의병장마을이 있고, 주변에 다른 캠핑장으로 광양 해뜰 오토 캠핑장, 봉강 하조 오토캠핑장, 백운제 농어촌테마공원 자동차 야영장, 광양 백운산 자연휴양림, 호수도도글램핑장이 있습니다.
야영장 사이트 수 | 29개 | ||
예약방식 | 실시간예약 | ||
편의시설 |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 ||
동계캠핑 | 불가능 | ||
반려동물 출입 | 불가능 | ||
땅바닥형태 | 파쇄석, 데크 | ||
지번주소 | 전남 순천시 서면 운평리 산 160 | ||
도로명주소 | 청소년수련원길 170 | ||
전화번호 | 061-749-4070 | ||
홈페이지 | 홈페이지로 이동 |
잔디 | 데크 | 파쇄석 | 맨흙 | 기타 |
화로대사용 | 동계캠핑 | 반려동물출입 |
전기 | 온수 | 샤워실 | 매점 | 장작판매 |
온수샤워 | WiFi | 장비대여 | 수영장 | 운동장 |
낚시 | 해수욕장 | 계곡 | 산책로 | 강 |
호수 |
카라반 | 팬션 | 방갈로 | 글램핑 |
광양 해뜰 오토 캠핑장은 전남 광양시 봉강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온라인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파쇄석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매점, 장작판매, 장비대여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봉강 하조 오토캠핑장은 전남 광양시 봉강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기, 온수, 매점, 장작판매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백운제 농어촌테마공원 자동차 야영장은 전남 광양시 봉강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광양 백운산 자연휴양림은 전남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선착순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데크, 맨흙 사이트가 총 69개로 구성되어 있고,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매점 등의 편의시설과 운동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호수도도글램핑장은 전남 광양시 봉강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혜사(순천), 4km
주소 : 전라남도 순천시 서면 정혜사길 32
문의 : 061-755-8486
순천시 서면 청소리(淸所里) 계족산(鷄足山) 골짜기에 위치한다.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를 사찰 경내 어디서나 들을 수 있어 세속의 많은 상념을 씻어준다. 정혜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 19교구 화엄사 말사이다. 정혜사는 본래 승주군에 속하였으나 최근에 순천시로 편입되었고 주변에는 송광사, 화엄사, 선암사와 같은 유서 깊은 고찰들이 가까이 위치하고 있다. 두 개의 석축을 쌓아 사찰을 조성하였는데, 1단의 석축에는 공양간이 있고, 2단의 석축 위에 사찰의 전각을 조성하여 두 개의 공간으로 구분하였다. 보물 제804호로 지정된 대웅전의 단아한 모습과 어울리게 정혜사는 오래된 사찰이라는 뜻에서 일명 고사(古寺)라고도 알려져 있다. 정혜사는 충지스님이 관음기도로서 원력(願力)을 세워 다시 절을 부흥시켜 당시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지금도 전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관음기도 도장으로 명성이 나 있으며 간절히 기도 발원하면 소원이 꼭 이루어진다는 영험있는 도장으로 알려져 있다. 순천읍지와 여지승람에는 정혜사에 부처님의 진신(眞身) 치사리(齒砂利)를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존하지 않는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순천시 서면 청소리(淸所里) 계족산(鷄足山) 골짜기에 위치한다.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를 사찰 경내 어디서나 들을 수 있어 세속의 많은 상념을 씻어준다. 정혜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 19교구 화엄사 말사이...
향림사(순천), 7.9km
주소 : 전라남도 순천시 조비길 36 (석현동)
도심속 순천시민들의 편안한 휴식의 공간으로 알려진 사찰이다. 대부분의 사찰들이 도심과 거리를 둔 산사에 위치하고 있으나, 향림사는 시민들이 매일 접할 수 있는 시내권역에 위치한다. 향림사에는 약수물이 나오는 향림정(香林井)이 있어 주변 사람들은 매일 약수물을 받아가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향림사의 원래 위치는 비봉산 중턱의 마애불이 위치한 곳에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는 석축으로 보이는 달담과 기와, 약수터의 흔적 등이 있다. 향림사의 창건에 대해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1853년 이기성이 기록한 향림사중창기(현재 대웅전 좌측의 요사채에 있음)에 의하면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년)가 기거했던 곳이라 한다. 그러나 이 기록은 다른 문헌에서는 전혀 언급이 없고 또한 조선후기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신빈성이 매우 빈약하다. 다만 대웅전앞에 있는 석탑 2기와 향림사 뒷산 중턱에 있는 마애불의 양식을 통해 볼 때 고려시대 후반기에는 향림사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창건배경 및 역사 여천군 화양면 용주리 1595번지 비봉산 중턱에 자리한 이절은 천년고찰임이 분명한 듯하나 창건에 관한 확실한 기록이 없어 단언할 수 없다. 이 절의 유일한 기문(記文)인 노석기(魯晳璣)의 '용문암중수서(龍門庵重修序)'에는 그저 신라때(新羅甲子肇?)에 창건되었다고 하였을 뿐이다. 그런가 하면 이 절의 안내판에는“신라 692년(효소왕 원년) 당나라 고승 도증법사(道證法師)에 의하여 창건되었다”고 적고 있다. 그 후의 사실은“1761년(영조 37)과 1846년(헌종 12)에 각각 중수했다”고 위 '용문암중수서'에 나와 있으나 초창과 더불어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처럼 이 절의 창건 역사와 그 후의 사실은 분명한 것이 없다. 이 절이 문헌상에 처음 나타나는 것은 일제시대 태고사 사법(太古寺寺法)에 의해서다.“여수군 화양면 용문산 대본사 선암사 말사”라 한 것으로 보아 1911년 6월 사찰령이 제정ㆍ반포된 이후 승주 선암사에 소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1914년 비구 경담(景潭)에 의해 이 절의 역사는 비로소 분명해진다. 그는 동지 20~30인과 함께 대시주 이기열(李基烈)과 화양면민들의 도움으로 지금‘용문암(龍門庵)’이란 현판이 걸려있는 작은 인법당을 건립하였다. 그래서 이 절에서는 지금까지도 삼성각 왼쪽 벽에 부인 김씨와 함께 앉아있는 이기열의 진영을 모셔놓고 향화(香火)를 받들고 있다. 그 후 1962년 10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 말사로 등록하고, 1964년 2월 주지로 부임하여 26년간 중창불사를 한 혜월(慧月, 1925~1989) 스님에 의해 사세가 더욱 확장되었다. 그는 법당중수는 물론 화양면 사무소의 건물을 옮겨와 관음전을 짓고 칠성각ㆍ요사채를 새로 건립하였으며, 1981년 11월에는 범종을 주조하고, 1988년에는 종각을 세워 절의 면모를 일신시켰다. 그리고 경내의 전기시설과 전화를 가설하고 진입로를 확장하는 등의 대대적인 불사는 모두 그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 후 이 절을 맡게 된 종걸(宗乞) 스님에 의해 1991년부터 1999년까지 9년간의 불사로 재도약을 시도해 왔다. 1999년 2월에 부임한 현재의 주지 성문(聖門)스님에 의해 불사는 계속 추진되고 있는 중이다. 가. 통일신라시대 사찰은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현재 대웅전 좌측에 걸려있는 향림사중수기(香林寺重修記, 1853년)의 현판에 의하면 玉龍禪師(도선국사, 827~898년)가 탁석한 장소라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록은 다른 문헌에서는 전혀 언급이 없고 또한 조선후기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신빙성이 매우 빈약하다. 나. 고려시대 고려시대의 향림사에 대한 기록도 전해지고 있지 않으나, 대웅전 앞에 있는 석탑 2기 와 향림사 뒤편 계곡의 중턱에 있는 마애불은 고려시대의 유물이 전하고 있다. 이로 볼 때 향림사는 고려시대 후반기에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 조선시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16세기 까지는 향림사에 관한 기록은 없다. 1618년(광해군10) 이수광에 의해 편찬된 '승평지' 사찰기를 보면 ‘향림사(香林寺), 月出庵(월출암), 高峯庵(고봉암), 上林寺(상람사)의 4개 사찰이 현재는 폐사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年刊)에도 寺名이 보이지 않다가 처음으로 '승평지'에 ‘지금은 폐찰되었다’라고 한 점으로 보아 1530년 이전 어느 때 폐찰되었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한편, 1729년(영조5)에 편찬된 '중간승평지(重刊昇平志)' 사찰조에 순천읍인들의 재력으로 순천읍의 진압사찰로 중창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뒤 1898年에 간행된 '승평속지(昇平續誌)'에 실려있는 문인들의 詩에 향림사가 계속 보인 점으로 보아 향림사는 1724年 중창된 이후 계속 법등을 이어오다가 1853年(香林寺 重修記)에 다시 부사(府使)를 비롯한 지방관리들과 승려, 불량설원(佛糧楔員)인 일반 시주자들에 의해 중수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862年에는 천수다리니경 목각판이 만들어 지기도 하였다. 1966년 11월에 이르러 대웅전을 현재의 위치로 옮기고 보수를 하였던 것으로 알겨지고 있으나 어느 위치에서 현위치로 옮겨 졌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도심속 순천시민들의 편안한 휴식의 공간으로 알려진 사찰이다. 대부분의 사찰들이 도심과 거리를 둔 산사에 위치하고 있으나, 향림사는 시민들이 매일 접할 수 있는 시내권역에 위치한다. 향림사에는 약수물이 ...
광양 형제의병장마을, 8km
주소 : 전남 광양시 봉강면 신룡리 461번지
호남 지역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위치한 광양형제의병장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큰 전공을 세우고 전사한 강희보 강희열 형제 의병장이 태어난 마을이다. 형 강희보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양에서 100여 명의 군사를 모아 의병을 일으켰고, 동생 강희열은 무과에 급제해 영호남의 군사 요충지인 구례군 토지면의 석주관을 지켰다. 두 형제는 임란 당시 위기에 처한 진주성에서 김천일 장군과 함께 10만 왜군에 맞서 전투를 벌이다 1593년 6월 27일과 29일 각각 장렬히 전사했다. 뒷날 선조는 강희보, 강희열 형제의 충절을 높이 사 진주 창렬사에 배향했고, 1970년에 이르러 고향인 봉강면 신룡리에 묘소와 묘비를 보수하고 사당을 건립했다. 현재 형제의병장마을에 남아 있는 사당은 1998년 이축한 것으로 동재, 서재, 삼문, 홍살문 등을 갖추고 있으며, 매년 이곳에서 시제를 올린다. 강희보, 강희열 형제 의병장의 묘소는 마을이 기대어 있는 바구산 등산로 중턱에 나란히 위치해 있다. 묘소까지는 완만한 산책로가 이어져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오기에 좋다. 형제의병장마을에는 형제의병장 사당 외에도 볼거리가 참 많다. 마을 안에 질매제계곡, 바구산이 있고,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백운산, 성불사, 성불계곡 등이 있다. 덕분에 다양한 농촌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편안히 쉬었다 오기에도 좋다. 순천, 광양, 여수 등 주변 도시와도 인접해 접근하기 수월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 중 하나. 형제의병장마을은 녹색농촌체험마을답게 여러 종류의 체험 프로그램을 준비해두고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밤 줍기, 고구마 캐기, 단감 따기, 매실 따기 등을 비롯해 우리 고유의 염색을 직접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전통 염색 체험, 그리고 소에게 여물을 주거나 소가 끄는 달구지에 몸을 실어보는 가축 기르기 체험 등은 체험객들에게 농촌 생활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해준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호남 지역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위치한 광양형제의병장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큰 전공을 세우고 전사한 강희보 강희열 형제 의병장이 태어난 마을이다. 형 강희보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