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장 상세 정보
* 땅바닥 형태
잔디 | 데크 | 파쇄석 | 맨흙 | 기타 |
* 이용조건
화로대사용 | 동계캠핑 | 반려동물출입 |
* 편의시설
전기 | 온수 | 샤워실 | 매점 | 장작판매 |
온수샤워 | WiFi | 장비대여 | 수영장 | 운동장 |
* 주변시설
낚시 | 해수욕장 | 계곡 | 산책로 | 강 |
호수 |
* 숙박시설
카라반 | 팬션 | 방갈로 | 글램핑 |
금은모래 캠핑장은 경기 여주시 강변유원지길에 위치하고 있으며 데크, 기타 사이트가 총 151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매점 등의 편의시설과 운동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인근에 가볼만한 관광지는 신륵사, 신륵사관광지, 여주 황포돛배가 있고, 주변에 다른 캠핑장으로 은모래유원지, 여주 강변유원지 캠핑장, 여주참숯마을 캠핑장, 인디언 캠핑장, 양섬지구 야영장이 있습니다.
야영장 사이트 수 | 151개 | ||
편의시설 | 전기, 온수, 매점 | ||
동계캠핑 | 가능 | ||
반려동물 출입 | 불가능 | ||
땅바닥형태 | 데크, 기타 | ||
도로명주소 | 경기도 여주시 강변유원지길 107 | ||
전화번호 | 전화번호 보기 | ||
홈페이지 | 홈페이지로 이동 |
잔디 | 데크 | 파쇄석 | 맨흙 | 기타 |
화로대사용 | 동계캠핑 | 반려동물출입 |
전기 | 온수 | 샤워실 | 매점 | 장작판매 |
온수샤워 | WiFi | 장비대여 | 수영장 | 운동장 |
낚시 | 해수욕장 | 계곡 | 산책로 | 강 |
호수 |
카라반 | 팬션 | 방갈로 | 글램핑 |
은모래유원지는 경기 여주시 연양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여주 강변유원지 캠핑장은 경기 여주시 연양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맨흙 사이트가 총 50개로 구성되어 있고,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여주참숯마을 캠핑장은 경기 여주시 강천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온라인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전기, 장작판매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인디언 캠핑장은 경기 여주시 현암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게시판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총 65개의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양섬지구 야영장은 피크닉 장소로 더욱 좋으며 근처에 양섬야구장이 있습니다. 경기 여주시 하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1개의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화장실, 샤워실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신륵사, 557m
주소 :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길 73
문의 : 031-885-2505
* 다양한 유물이 숨쉬고 있는 고찰, 신륵사 * 신륵사는 여주읍에서 동북쪽으로 약 2.5km 정도 떨어진 남한강 상류 봉미산 기슭에 있는 오래된 전통 사찰로,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고려 말인 1376년(우왕 2) 나옹(懶翁) 혜근(惠勤)이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하며, 200여 칸에 달하는 대찰이었다고 전한다. 1472년(조선 성종 3)에는 영릉 원찰(英陵願刹)로 삼아 보은사(報恩寺)라고 불렀다. 1858년 헌종의 조모인 순원왕후(純元王后)가 호조판서 김병기(金炳冀)에게 명하여 절을 크게 중수토록 하였는데 이때부터 영릉의 원찰로서 의미가 약해지면서 다시 신륵사라 부르게 되었다. 근. 현대사에 있어 신륵사의 활동은 크게 알려지지 않으나, 1925년 열반당 14칸을 새로 짓고, 1929년 강성인(姜性仁) 스님이 주지 재임시 김인주(金仁柱)가 화주(化主)로 명부전을 중건하였다. * 신륵사의 유래와 전설 * 신륵사로 부르게 된 유래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하나는 “미륵(혜근을 가리킴)이, 또는 혜근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龍馬)를 막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고려 고종 때 마을에서 용마가 나타났는데, 이 용마가 걷잡을 수 없이 사나워 사람들이 붙잡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인당대사(印塘大師)가 나서서 고삐를 잡자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神力)으로 말을 제압하였다 하여 절 이름을 신륵사라고 했다”는 것이다. * 신륵사의 다양한 문화 유물 * 신륵사 인근 강가쪽 암반 위에 벽돌로 쌓은 다층 전탑이 있어서 고려 때부터 벽절이라고도 불렸다. 나옹화상이 이 절에서 입적을 했고, 그의 보제존자석종은 1379년에 제작된 것으로 고려 말의 대표적인 부도 양식을 띠고 있다. 성종 옆에 있는 석종비문은 목은 이색이 썼다. 역사가 깊고 규모도 웅장하며 주위의 경관도 뛰어난 사찰로 경내엔 화려한 극락전을 비롯, 조사당 명부전, 다층석탑, 다층전탑, 석종, 대장각기비 등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 8점을 보유하고 있다. [문화재 정보] 1) 신륵사 조사당(보물 제180호) 2) 신륵사 다층석탑(보물 제225호) 3) 신륵사 다층전탑(보물 제226호) 4)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보물 제228호)신륵사 조사당 근처의 구릉에는 석종 하나가 그에 딸린 비 및 석등과 함께 세워져 있다. 이것은 고려 말 공민왕 때에 왕사를 지낸 보제존자 나옹화상(1320∼1376)의 사리를 모신 부도이다. 종 모양의 형태를 하고 있어서 석종으로 불린다. 이곳에 석등까지 세워져 있는 것은 나옹화상의 위상이 그만큼 높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고려말의 대표적인 석종 부도로서, 이전의 팔각원당형 양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조선시대 석종형 부도의 선구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석종형 부도는 통도사·금산사·용연사·봉암사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신륵사 보제존자석종은 계단탑 형식을 한 통도사·금산사의 양식과 비슷하다. 석종의 높이와 지름은 각각 1.9m와 1.1m이다.5)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비(보물 제229호) 6) 신륵사 대장각기비(보물 제230호) 7)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앞 석등(보물 제231호) 8) 신륵사 극락보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8호)
출처 : 한국관광공사* 다양한 유물이 숨쉬고 있는 고찰, 신륵사 * 신륵사는 여주읍에서 동북쪽으로 약 2.5km 정도 떨어진 남한강 상류 봉미산 기슭에 있는 오래된 전통 사찰로,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신륵사관광지, 714m
주소 : 경기도 여주시 강변유원지길 105 (연양동)
* 역사체험과 휴양을 동시에, 신륵사관광지 * 신륵사는 아름다운 경관과 많은 유물·유적들을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고, 고려 우왕 2년(1376년)에 나옹선사가 입적하면서 유명한 절이 되었다. 신륵사를 일명 "벽절" 이라 부르게 한 다층전탑이 묵묵히 여강을 굽어보고 있으며, 나옹선사의 당호를 딴 정자 강월헌(江月軒)에서는 그 옛날 시인 묵객들이 시 한 수를 읊고 있는 것 같다. 신륵사는 남한강변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다양한 유물 등 볼거리를 기반으로 1977년에 관광지로 지정되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자주 찾고 있다. * 신륵사관광지의 두 가지 코스 * * 금은모래 지구 30∼50년생 느티나무 200여 그루 그늘이 조성되어 있으며 화장실과 수도시설, 주차시설 등이 완비되어 가족, 단체 등의 캠프와 강변에서 수영놀이가 가능하고 뱃놀이 위락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며 강변에서 수석 채취가 가능하다. 또한 관광지 이용객의 다양한 기호도에 부 응하기 위하여 리버스랜드에서 상가, 편의시설, 휴게시설, 오락장, 유원시설(바이킹 외 16 종)을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 신륵사 지구 신륵사 관광지가 조성되어 숙식이 가능하며 세종대왕릉, 목아 불교박물관과 함께 관광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여주 대교에서 신륵사까지 데이트 코스로 적격임, 또한 강변을 이용한 천연 갈대숲, 퍼팅 놀이장, 주차시설, 숙박시설, 음식점, 토산품 판매시설, 음수대, 체육놀이 공원이 완벽하게 조성되어 있으며, 향토 사료관, 청소년 수련원이 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역사체험과 휴양을 동시에, 신륵사관광지 * 신륵사는 아름다운 경관과 많은 유물·유적들을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고, 고려 우왕 2년(1376년)에 나옹선사가 입...
여주 황포돛배, 1.1km
주소 : 경기도 여주시 천송동 신륵사관광지내 조포나루터
* 조선시대의 물자 수송을 체험할 수 있는 황포돛배 *황포돛배는 말 그대로 누런 포를 돛에 달고 그 바람의 힘으로 물자를 수송했던 배이다. 여주는 국토의 대동맥을 연결하는 한강의 상류지류인 남한강을 끼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특색으로 인해 조선시대 4대 나루 중 이포와 조포나루를 보유하고 있다. 이포와 조포나루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물자교역의 핵심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여주는 물자 교역이 번성하였던 중심 상업도시로서 가치가 있는 고장이라 할 수 있다.* 서민들의 삶이 녹아있는 황포돛배 *황포돛배는 대부분 0.4t에서 0.5t 정도의 작은 배로 어업이나 물자 수송 등에 쓰였다. 몸통은 스기나무로 만들고 노는 쪽나무로 만들며, 돛대는 죽나무와 아주까리나무로 만든다. 돛대는 6m 정도로 길게 세우고, 황토를 물들인 기폭을 매단다. 가로 2m 50㎝, 세로 6m의 기폭을 황톳물에 담가서 물을 들인 후에 잘 말려서 사용한다. 황톳물은 두세 번 반복하여 들인다. 한번 마련한 기폭은 2~3년 정도 사용할 수 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조선시대의 물자 수송을 체험할 수 있는 황포돛배 *황포돛배는 말 그대로 누런 포를 돛에 달고 그 바람의 힘으로 물자를 수송했던 배이다. 여주는 국토의 대동맥을 연결하는 한강의 상류지류인 남한강을 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