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장 상세 정보
* 땅바닥 형태
잔디 | 데크 | 파쇄석 | 맨흙 | 기타 |
* 이용조건
화로대사용 | 동계캠핑 | 반려동물출입 |
* 편의시설
전기 | 온수 | 샤워실 | 매점 | 장작판매 |
온수샤워 | WiFi | 장비대여 | 수영장 | 운동장 |
* 주변시설
낚시 | 해수욕장 | 계곡 | 산책로 | 강 |
호수 |
* 숙박시설
카라반 | 팬션 | 방갈로 | 글램핑 |
숲속가든 캠핑장은 경남 사천시 사남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화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데크, 파쇄석, 맨흙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장작판매, Wi-Fi, 장비대여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인근에 가볼만한 관광지는 운흥사, 백천사, 고성학림최영덕씨고가가 있고, 주변에 다른 캠핑장으로 용소유원지 야영장, 왕국 얼음골 휴양지, 얼음골 야영장, 용소 자연발생유원지, 능화숲이 있습니다.
야영장 사이트 수 | 전화문의 | ||
자동차 야영장 개수 | 30개 | ||
예약방식 | 전화 | ||
편의시설 | 전기, 온수, 장작판매, Wi-Fi, 장비대여 | ||
동계캠핑 | 가능 | ||
반려동물 출입 | 가능 | ||
땅바닥형태 | 파쇄석, 데크, 맨흙 | ||
도로명주소 | 경남 사천시 사남면 삼상로 832 | ||
전화번호 | 전화번호 보기 | ||
홈페이지 | 홈페이지로 이동 |
잔디 | 데크 | 파쇄석 | 맨흙 | 기타 |
화로대사용 | 동계캠핑 | 반려동물출입 |
전기 | 온수 | 샤워실 | 매점 | 장작판매 |
온수샤워 | WiFi | 장비대여 | 수영장 | 운동장 |
낚시 | 해수욕장 | 계곡 | 산책로 | 강 |
호수 |
카라반 | 팬션 | 방갈로 | 글램핑 |
용소유원지 야영장은 경남 사천시 사남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왕국 얼음골 휴양지는 경남 고성군 상리면 동산리 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얼음골 야영장은 경남 고성군 상리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화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파쇄석, 기타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장작판매, Wi-Fi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용소 자연발생유원지는 경남 사천시 사남면 종천리 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40개의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능화숲은 경남 사천시 사남면 우천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맨흙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운흥사(경남), 2.9km
주소 : 경상남도 고성군 하이면 와룡2길 248-28
문의 : 055-835-8656
고성군 하이면 와룡산 향로봉(香爐峯)중턱에 위치한 천년고찰 운흥사(雲興寺)는 1,300여 년 전 신라 문무왕16년 (676년)의상조사가 창건한 신라고찰로서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13교구 본사인 쌍계사 50여 말사 중 산세와 규모가 비교적 큰 수 말사에 속하고, 임진왜란때 승병의 본거지로서 사명대사의 지휘아래 6,000여 명의 승병이 머물 정도로 규모가 컸으며,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수륙양면 작전 논의차 세 번이나 이 곳을 왕림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불가의 화원 양성소로 큰 역할을 했는데 조선시대의 불화 중 가장 많은 걸작품을 남기고 있는 『의겸(義謙)』 등이 나왔다. 그 당시 절의 규모는 현존하는 산내암자인 천진암과 낙서암을 비롯하여 아홉군데의 암자가 있었고 곳곳에 남아있는 절터와 대형 멧돌 그리고 전방 1km 떨어진 언덕에 고승들의 사리가 안장되어 있는 부도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상당한 규모였을 것으로 짐작되고, 임진왜란 때 병화로 소실된 것을 효종 2년(1651년)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경내에 남아있는 것이라곤 대웅전과 영산정, 요사채와 그 사이의 장독대가 전부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범종루(梵鍾樓), 산신각,요사채 등이 있고, 이 중 대웅전은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8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웅전 내에는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61호인 괘불(掛佛)과 조선 후기에 제작한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84호인 경판(經板) 등이 보관되어 있다. 대웅전 안에 모셔져 있는 삼존불상과 더불어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 `감로탱`인데 이는 조선 중기 이후에 불화를 잘 그리기로 이름난 의겸이 그린것으로 보아지며 당시 일반인들의 생활상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현재 보물로 지정된 괘불탱화를 비롯하여 대웅전, 영산전, 명부전 목조각상, 목제원패, 경판 등 30여점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임진왜란때 가장 많은 승군이 죽은 날로 기록되는 음력 2월 8일이면 국난극복을 위해 왜적과 싸우다가 숨진 호국영령들을 위한 영산제가 열린다. 운흥사에서 와룡산 정상쪽으로 300m쯤 오르면 운흥사의 부속암자인 천진암(天眞庵)에 이르고 여기서 200m쯤 오르면 낙서암(樂西庵)에 이르게 되는데, 낙서도인이 수도하였다는 낙서암은 물이 세다고 하고 이 물로 술을 빚으면 술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고성군 하이면 와룡산 향로봉(香爐峯)중턱에 위치한 천년고찰 운흥사(雲興寺)는 1,300여 년 전 신라 문무왕16년 (676년)의상조사가 창건한 신라고찰로서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13교구 본사인 쌍계사 50여 말사 중...
백천사(사천), 4.2km
주소 : 경상남도 사천시 백천길 326-2
문의 : 055-834-4010
1300년 전 신라 문무대왕 시절 의선대사(의상대사의 속세 형제)가 백천사를 처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몸속법당 부처님을 모시게 된 백천사가 있는 와룡산에는 옛날의 절터가 많기로 유명하다. 구전(口傳)되는 전설로 와룡산에는 팔만구암자(八萬九菴子)가 있었다고 전하는 것을 보면 꽤 많은 사찰(寺刹)이 이 산 속에 들어 앉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진양지(晋陽誌) 등에 나오는 백천사(白泉寺)의 기록에는 '백천사는 와룡산의 서편에 있었다. 도솔암에서 흘러내리는 동쪽계곡은 양구택, 조황담, 백련폭이 그 중 아름다운 곳이요. 선정암에서 흘러 내리는 절의 서쪽 계곡은 세심정, 무금대 등의 좋은 경치가 있고 동서계곡의 상하에 물레방아 16개소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뒤에는 12개만 남았다. 묵계암도 백천사 북쪽 10리에 있었다.'하는 것으로 보아 대충 백천사의 위치를 가늠해 볼 수가 있을 뿐 아니라 백천계곡의 경관마저 짐작이 된다. 이 절터 부근에는 축을 쌓은 돌담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석기(石器)등 기왓장이 부서진 채 널려있는 것을 새롭게 재건축하여 구국도량의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1300년 전 신라 문무대왕 시절 의선대사(의상대사의 속세 형제)가 백천사를 처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몸속법당 부처님을 모시게 된 백천사가 있는 와룡산에는 옛날의 절터가 많기로 유명하다. 구전(口...
고성학림최영덕씨고가(매사고택), 6.3km
주소 : 경상남도 고성군 하일면 학동돌담길 55 (하일면)
문의 : 055-673-6904
세세지장토를 누릴 곳 고성 학림리 학동(鶴洞)은 17c 후반 전주 최씨 문성공 최아(崔阿)의 16세손이며 임란공신 의민공 최균(崔均)의 현손 최형태(亨泰)공이 하늘에서 학이 내려와 이 마을에 알을 품고 있는 꿈을 꾸었다. 날이 밝자 그길로 꿈에서 본 그곳에 가보니 과연 명당이라, 세세지장토를 누릴 수 있는 곳이라 믿고 동네 이름을 학동으로 부르고 이 마을에 입주, 개척하기 시작했다. 입향조 형태공의 5세손 성화(聖和) 최필간(必侃)공이 큰댁에서 분가하니 이분이 최씨고가의 중시조이다. 손자인 매사(梅史) 최태순(泰淳)공이 현재 규모의 주택으로 확장 개축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최씨고가는 전형적인 남부지역 사대부 가옥의 형식으로, 모든 건물은 일자형 평면이며, 안채, 서익랑채, 곳간채, 사랑채, 대문채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우진각 지붕)외 모두 팔작지붕건물이며, 사랑채 4귀에는 넓은 기둥이 설치되어 있다. 대문채는 맞배지붕의 솟을지붕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 중문 앞에 내외차단벽이 이채로우며, 사랑채-학림헌(鶴林軒)-은 당시 지방 수령-통영 통제사-이 있는 관아와 너무 멀어 민초들이 관청에 드나들기 힘든 시절 지방의 유력자인 최영덕(泳德)씨의 선조들에게 행정권을 위임해준 향소 역할을 했던 곳이다. 때문에 학림헌의 천정은 당시 관청의 그것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지대(축담)에는 손 씻는 돌세면대. 소피를 보는 돌거북 등이 있다. 후원 텃밭에 있는 井자 모양의 화강석 우물 뚜껑에 난 3개의 구멍은 천지인을 뜻하며 당시 석공의 솜씨를 자랑한다. 이 지역에서 출토되는 자연석(개석)으로 쌓여져 있는 담장은 주변의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마을 전체의 돌담길-학동마을 옛담장-은 등록문화재 제258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주최씨 집안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육영재(育英齋,경남문화재 제208호)를 만들어 일제때 신 교육기관이 생길 때가지 운영하여 많은 한학자를 배출하여 집안에 약 20여권의 문집(文集)이 나왔으며, 1910년 한일합방때 순국 자결한 우국지사 서비 최우순(西扉 崔宇淳)은 필간공의 종손자이며, 3대 국회의원 최갑환(甲煥), 최재구(載九,4선의원) 부자 등도 직계 증.고손이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세세지장토를 누릴 곳 고성 학림리 학동(鶴洞)은 17c 후반 전주 최씨 문성공 최아(崔阿)의 16세손이며 임란공신 의민공 최균(崔均)의 현손 최형태(亨泰)공이 하늘에서 학이 내려와 이 마을에 알을 품고 있는 꿈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