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장 상세 정보
* 땅바닥 형태
잔디 | 데크 | 파쇄석 | 맨흙 | 기타 |
* 이용조건
화로대사용 | 동계캠핑 | 반려동물출입 |
* 편의시설
전기 | 온수 | 샤워실 | 매점 | 장작판매 |
온수샤워 | WiFi | 장비대여 | 수영장 | 운동장 |
* 주변시설
낚시 | 해수욕장 | 계곡 | 산책로 | 강 |
호수 |
* 숙박시설
카라반 | 팬션 | 방갈로 | 글램핑 |
중랑가족캠핑장은 서울 중랑구 망우로87길에 위치하고 있으며 온라인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데크, 파쇄석 사이트가 총 47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장작판매, Wi-Fi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인근에 가볼만한 관광지는 나만갑선생신도비, 산들소리수목원, 학도암이 있고, 주변에 다른 캠핑장으로 라라차차캠핑장, 사노리숲캠핑장, 구리 토평 가족캠핑장, 산들소리 수목원 캠핑장, 초안산캠핑장이 있습니다.
야영장 사이트 수 | 47개 | ||
예약방식 | 온라인실시간예약 | ||
편의시설 | 전기, 온수, 장작판매, Wi-Fi | ||
동계캠핑 | 가능 | ||
반려동물 출입 | 불가능 | ||
땅바닥형태 | 파쇄석, 데크 | ||
도로명주소 | 서울 중랑구 망우로87길 110 (망우동) | ||
전화번호 | 전화번호 보기 | ||
홈페이지 | 홈페이지로 이동 |
잔디 | 데크 | 파쇄석 | 맨흙 | 기타 |
화로대사용 | 동계캠핑 | 반려동물출입 |
전기 | 온수 | 샤워실 | 매점 | 장작판매 |
온수샤워 | WiFi | 장비대여 | 수영장 | 운동장 |
낚시 | 해수욕장 | 계곡 | 산책로 | 강 |
호수 |
카라반 | 팬션 | 방갈로 | 글램핑 |
라라차차캠핑장은 경기 구리시 사노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노리숲캠핑장은 경기 구리시 동구릉로459번길에 위치하고 있으며
구리 토평 가족캠핑장은 경기 구리시 왕숙천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화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산들소리 수목원 캠핑장은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잔디, 데크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초안산캠핑장은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장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데크, 파쇄석 사이트가 총 16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매점, Wi-Fi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나만갑선생신도비, 4km
주소 : 경기 구리시 사노동 산 163번지
신도비란 종2품 이상의 관원의 묘가 있는 근처 길가에 세우는 비석으로 정3품 당상관(堂上官) 이상의 벼슬을 한사람이 택술(擇述)하는 것이 예이다. 나만갑(1592~1642)선생의 본관은 안정(安定)이며 자는 몽뢰(夢賚)호는 구포(毆浦)이며, 광해군 5년(1613)에 사마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이 되었으나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서궁 유폐 사건으로 낙향, 오로지 학문에 열중하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순릉참봉에 배수되었다 그 해에 알성문과에 응시 병과에 급제하였다. 그후 홍문관 교리로 있던 때에 당쟁에 휘말려 강동현감으로 좌천되었다. 1627(인조5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도에서 인조를 보위 하였다. 환도후 병조정랑, 홍문관 수찬 사헌부 지평등을 두루 거친후 1635년 형조참의로 임금을 보위하였다. 이어 병조 참의가 되고 무고로 남해로 유배되었다가 1639년 영주에서 사망하였으며, 후에 좌의정으로 추증(追曾)되었다. 저서로는 (병자록:丙子錄)(구포집:毆浦集)이 있으며 신도비의 글은 청음 김상헌이 글을 지었고, 추기(追記)는 동춘당 송준길이 쓰고 손자 양좌(良佐)가 지었다. 이외에도 문곡 김수항이 지은 지명(誌銘)과 우암 송시열이 글을 지은 묘표(墓表)가 있다. 1985년 6월 28일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신도비란 종2품 이상의 관원의 묘가 있는 근처 길가에 세우는 비석으로 정3품 당상관(堂上官) 이상의 벼슬을 한사람이 택술(擇述)하는 것이 예이다. 나만갑(1592~1642)선생의 본관은 안정(安定)이며 자는 몽뢰(夢賚)...
산들소리수목원, 5.1km
주소 :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불암산로59번길 48-31
문의 : 031-574-3252
산들소리수목원은 서울 경계선 가장 가까운 곳 남양주시 별내면에 위치하고 있다. 정문에 들어서는 순간 눈앞에 불암산의 전경이 한가득 펼쳐지고 자연스러운 멋이 가득한 공간이다. 불암산 줄기를 타고 펼쳐진 자연적인 생태와 더불어 자생식물, 수변식물, 향기식물, 목본류, 관목류 등을 단계적으로 식재.조성하여 전문 수목원으로서 입지를 다져나가고 있다. 또한, 산들소리 수목원은 지리적으로 접근이 용이한 장점을 살려 주변 학교, 교육시설들의 자연학습장으로서의 역할 기대와 시민들의 문화체험 욕구에 맞춘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며 더 많은 체험들을 계획, 조성 중에 있다. * 규모 : 4만 여평
출처 : 한국관광공사산들소리수목원은 서울 경계선 가장 가까운 곳 남양주시 별내면에 위치하고 있다. 정문에 들어서는 순간 눈앞에 불암산의 전경이 한가득 펼쳐지고 자연스러운 멋이 가득한 공간이다. 불암산 줄기를 타고 펼쳐진 ...
학도암(서울), 5.5km
주소 :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산102
서울 근교에 자리한 사찰 가운데 학이 날아와 놀았다는 사찰은 아마도 학도암 뿐일 것이다. 그만큼 주변의 경치가 학이 와서 놀만큼 빼어나게 아름다웠다는 의미이다. 지금도 학도암 주변은 이름에 걸맞게 경치가 좋다. 한여름에는 푸른 숲과 어울려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그 속에서 천진한 어린이들이 뛰어논다. 겨울이면 나뭇가지 위로 눈이 덮여 설국이 연출되기도 한다. 산중에 자리한 사찰치고 그러한 풍경을 가지지 않은 곳이 어디있겠냐 싶지만 학도암은 불암산의 감추어진 비경이 아닐 수 없다. 학도암의 상징은 암자 뒤쪽 커다란 바위 면에 새겨진 높이 13.4m 에 이르는 거대한 마애관음보살좌상이다. 이 마애관음보살좌상은 1870년(고종 7) 명성황후가 발원하여 조성했다고 하는 것으로 자비로운 미소로 중생을 굽어 살피고 있어 학도암 뿐만 아니라 노원구의 명물이기도 하다.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은 전국적으로 많이 남아있지만 관음보살을 새긴 것은 많지가 않아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중 학도암 마애관음보살좌상은 가장 크고 선명하게 남아있어 중요한 문화재로 여기고 있다. 이처럼 학도암은 학이 날아와 놀만큼 아름다운 경치를 주변에 두고 전국에서 가장 큰 마애관음보살상 아래에서 향화(香花)를 올리고 있는 소중한 도량이다. * 창건배경 및 역사학도암은 1624년(인조 2) 무공화상(無空和尙)이 불암산에 있던 옛 암자를 지금의 자리로 옮겨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기의 사정을 적은 기록이 없어 옛 암자라고 한 것이 어디에 있었으며,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1927년 편찬된 『봉선본말사지(奉先本末寺誌)』「학도암(鶴到庵)」조에 의하면 창건이후 250여년의 역사는 공백으로 남아있고, 1878년(고종 15)에 가서야 벽운화상(碧雲和尙)이 재창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학도암 주차장 아래 자연암벽에 선각(線刻)으로 조성되어 있는 2기의 부도가 있어 1878년 벽운화상이 재창한 이전의 역사를 말해준다. 이 부도는 왼쪽부터 “청신녀월영영주지탑(淸信女月影靈珠之塔)”“환□당선사취근지탑(幻□堂禪師就根之塔)이다. 이 가운데“청신녀월영영주지탑(淸信女月影靈珠之塔)”은“가경이십사년기묘십월(嘉慶二十四年己卯十月)”이라는 명문이 함께 기록되어 있어 1819년(순조 19)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환□당선사취근지탑(幻□堂禪師就根之塔)도 19세기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이 된다. 또한 사찰의 뒤쪽 암벽에 선각된 마애관음보살좌상을 1870년(고종 7) 명성황후가 발원하여 조성했다고 한다. 이로 볼 때 1819년 무렵과 1870년 무렵에도 사찰은 법등을 이어오고 있었으며, 1875년에 이르러 벽운화상이 중창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에는 1878년 한씨(韓氏) 일가의 시주로 마애관음좌상을 보수하였고, 다시 1885년(고종 22) 벽운화상이 화승(畵僧) 경선화상(慶船和尙)을 불러와 불상 1구를 개금하고 불화 6점을 그려 봉안하였다. 이 시기 불사에 관한 내용은 〈천보산학도암개금탱화시주록기(天寶山鶴到庵改金幀畵施主錄記)〉로 기록되어 『봉선본말사지(奉先本末寺誌)』에 전하고 있다. 1922년에는 성담(聖曇)화상이 주지로 머물며 개인소유로 넘어간 사찰 소유의 산림(山林) 10여 정보를 매입하여 사찰의 경계를 확장하였다. 그 후 1966년에 이르러 김명호 주지가 퇴락한 법당을 중건하였으며, 1970년에 영산회상도를 봉안하였다. 1972년에는 삼성각에 칠성탱과 산신탱을 봉안하였다. 2000년에는 한사람이 겨우 출입할 수 있을 정도였던 자연 동굴을 넓혀 안에 석조약사여래좌상과 일광보살좌상, 월광보살좌상을 봉안하고 약사전이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2005년에는 무이(無二) 주지스님이 법당 오른쪽 공터에 430cm 높이의 석조지장보살좌상을 봉안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서울 근교에 자리한 사찰 가운데 학이 날아와 놀았다는 사찰은 아마도 학도암 뿐일 것이다. 그만큼 주변의 경치가 학이 와서 놀만큼 빼어나게 아름다웠다는 의미이다. 지금도 학도암 주변은 이름에 걸맞게 경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