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장 상세 정보
* 땅바닥 형태
잔디 | 데크 | 파쇄석 | 맨흙 | 기타 |
* 이용조건
화로대사용 | 동계캠핑 | 반려동물출입 |
* 편의시설
전기 | 온수 | 샤워실 | 매점 | 장작판매 |
온수샤워 | WiFi | 장비대여 | 수영장 | 운동장 |
* 주변시설
낚시 | 해수욕장 | 계곡 | 산책로 | 강 |
호수 |
* 숙박시설
카라반 | 팬션 | 방갈로 | 글램핑 |
자양보오토캠핑장은 경남 산청군 시천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데크, 파쇄석 사이트가 총 8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장작판매, Wi-Fi 등의 편의시설과 운동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인근에 가볼만한 관광지는 산청 조식 유적, 지리산국립공원, 산청덕천서원이 있고, 주변에 다른 캠핑장으로 산청 청담농원캠핑장, 지리산 깊은 샘, 자유캠핑장, 하동다목적캠핑장, 대포숲캠핑장이 있습니다.
야영장 사이트 수 | 8개 | ||
자동차 야영장 개수 | 23개 | ||
편의시설 | 전기, 온수, 장작판매, Wi-Fi | ||
동계캠핑 | 가능 | ||
반려동물 출입 | 가능 | ||
땅바닥형태 | 파쇄석, 데크 | ||
도로명주소 | 경남 산청군 시천면 남명로 392-23 | ||
전화번호 | 전화번호 보기 | ||
홈페이지 | 홈페이지로 이동 |
잔디 | 데크 | 파쇄석 | 맨흙 | 기타 |
화로대사용 | 동계캠핑 | 반려동물출입 |
전기 | 온수 | 샤워실 | 매점 | 장작판매 |
온수샤워 | WiFi | 장비대여 | 수영장 | 운동장 |
낚시 | 해수욕장 | 계곡 | 산책로 | 강 |
호수 |
카라반 | 팬션 | 방갈로 | 글램핑 |
산청 청담농원캠핑장은 경남 산청군 단성면 자양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파쇄석, 맨흙 사이트가 총 15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지리산 깊은 샘은 경남 산청군 삼장면 대하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20개의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유캠핑장은 경남 하동군 옥종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동다목적캠핑장은 경남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데크 사이트가 총 14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온수샤워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대포숲캠핑장은 경남 산청군 삼장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청 조식 유적, 1.2km
주소 : 경남 산청군 시천면 사리384번지외 92필지
조선 중기의 유명한 유학자인 남명 조식의 유적이다. 조식 선생은 많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거절하고,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평생을 보냈다. 이 유적은 두 곳으로 나뉘는데, 사리(絲里)에는 산천재, 별묘, 신도비, 묘비가 있고, 원리(院里)에는 덕천서원과 세심정이 있다. 산천재는 선생이 학문을 닦고 연구하던 곳으로 명종 16년(1561)에 세웠고, 순조 18년(1818)에 고쳐졌다. 규모는 앞면 2칸, 옆면 2칸이다. 덕천서원은 선조 9년(1576)에 세웠고, 앞면 5칸, 옆면 2칸의 현재 건물은 1926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세심정은 선조 15년(1582)에 처음 세웠다. [전문설명] 조식유적(曺植遺跡)은 조선중기(朝鮮中期)의 위대(偉大)한 유현(儒賢)이며 뛰어난 실천(實踐) 도학자(道學者)였던 남명선생(南冥先生)이 만년(晩年)에 강학(講學)하던 산천재(山天齋)를 비롯하여 사후(死後) 그를 모시던 덕천서원(德川書院) 등을 일괄(一括) 지정(指定)한 유적지(遺跡地)이다. 남명(南冥) 조식(曺植)(燕山君 7년(年) 1501∼선조(宣祖) 5년(年), 자건중(字楗仲), 별호산해(別號山海), 본관창녕(本貫昌寧))은 남다른 재질(才質)과 용공(用工)(절제(節制))으로 일찍부터 학덕(學德)을 갖추어 대성(大成)하였으나 사환(仕宦)(벼슬)에는 나아가지 않고, 평생(平生)동안 선비와 처사(處士)(산림(山林))로써 굳건히 일관(一貫)하였다. 38세 때 헌릉참봉(獻陵參奉)을 시작으로 여러 번 벼슬이 제수(除授)되고 왕(王)이 면대(面對)하기를 청(請)(징소(徵召)) 하였으나 매번 상소(上疏)(봉사(封事))로써 의견(疑見)을 개진(開陣) 하였을 뿐 나아가지 않았고, 오직 66세(명종(明宗) 21, 1566)되던 해 10월(月) 초(初)에 상경(上京)하여 왕(王)을 잠시(暫時) 뵈옵고는 곧 귀향(歸鄕)하였다. 사후(死後) 광해군(光海君) 7년(年)(1615)에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되고 시호(諡號)를 문정(文貞)이라 하였다. 경상도(慶尙道)의 북(北)(안동(安東))과 남(南)(진주(晋州))에서 동년생(同年生)으로 다같이 불세출(不世出)의 홍유(鴻儒) 석덕(碩德)에 이른 퇴계이황(退溪李滉)이 연구(硏究)와 사색(思索)과 저술(著述)을 통해 천도(天道)(이치(理致))를 밝힘에 보다 힘썼다면, 남명(南冥)은 반궁(反窮)(자성(自省))과 체험(體驗)과 실천(實踐)을 통해 의리(義理)의 숭상(崇尙)(시폐(時弊)의 구제(救濟))에 보다 힘썼다고 할 수 있다. 남명(南冥)의 학문(學問)은 스스로 강조(强調)한 바와 같이 경의(敬義)로써 대표(代表)되는데 경(敬)은 안으로 궁리명선(窮理明善)하는 용공(用工)이며 의(義)는 경(敬)한 바를 밖에서 실행(實行)하는 용단(勇斷)으로도 이해(理解)될 수 있을 것 같다. 이같이 고고(孤高) 강의(剛毅)한 기상(氣象)을 깔고 있는 남명(南冥)의 학풍(學風)은 최영경(崔永慶), 정인홍(鄭仁弘), 정구(鄭逑), 김우옹(金宇옹) 등 발군(拔群)의 여러 제자(弟子)들을 통해 후일(後日)에 이르도록 퇴계(退溪)나 율곡학파(栗谷學派)와는 구별(區別)되는 독특(獨特)한 학맥(學脈)으로 전승(傳承)되었다. 특히 임진왜란(壬辰倭亂)에 있어서는 주지(周知)하는 바와 같이 곽재우(郭再祐) 김면(金沔) 정인홍(鄭仁弘)등 경상우도의병(慶尙右道義兵)의 주축(主軸)이 이 문하(門下)에서 군기(群起)하여 국난극복(國難克服)에 크나큰 공덕(功德)을 세웠다. 그러나 한편으로 고제(高弟) 정인홍(鄭仁弘)이 그 후(後) 대북파(大北派)의 영수(領袖)로서 광해군(光海君) 정권(政權)과 연계(連繫)되고 처형(處刑)된 까닭에 조선후기(朝鮮後期)는 물론(勿論), 금일(今日)에 있어서도 남명(南冥)에 대한 이해(理解)와 평가(評價) 및 천양(闡揚)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實情)이다. 남명(南冥)은 현(現) 합천군(陜川郡) 삼가면(三嘉面) 토동(兎洞)(외토리(外吐里))에서 생장(生長)하고, 30세(歲)되던 중종(中宗) 25년(年)(1530)에 처향(妻鄕)이던 현(現) 김해군(金海郡) 대저면(大渚面) 탄동(炭洞)(주박동(主薄洞))으로 옮기어 산해정(山海亭)을 지어 경의(敬義)공부에 몰두(沒頭)하였다. 48세(명종(明宗) 3, 1548)에 다시 향리(鄕里)(토동(兎洞))로 돌아와 학복당(鶴伏堂)과 뢰용정(雷龍亭)을 지어 찾아드는 많은 학자(學者)(문인(門人))을 가르쳤고, 61세 되던 명종(明宗) 16년(年)(1561)에 이곳 사리(絲里)(사륜동(絲綸洞), 당시는 진주목(晋州牧) 덕천동(德川洞))로 재차(再次) 옮겨 산천재(山川齋)를 지어 제생(諸生)에게 강학(講學)하던 중(中) 11년(年) 후(後)에 서거(逝去)하였다. 그러므로 현재(現在) 김해(金海)의 산해정(山海亭), 삼가(三嘉)의 뢰용정(雷龍亭)(경북문화재자료(慶北文化財資料) 제(弟)129호(號)) 등도 남아 있으나 만년(晩年)에 거처(居處)하던 이곳 일대(一帶)가 남명(南冥)의 유적지(遺跡地) 중 가장 대표적(代表的)인 곳이다. 이같은 실정(實情)을 고려(考慮)하여 1984년(年) 1월(月)에 이르러 이곳 유적(遺跡)의 각 건물(建物)이나 석물(石物)이 갖는 문화재적(文化財的) 평가(評價)보다도 그 전체(全體)를 일괄(一括)하여 남명(南冥)선생의 학덕(學德)과 교육(敎育)(강학(講學))을 오늘날에 되살려 숭앙(崇仰) 천양(闡揚)하는 상징적(象徵的) 중심체(中心體)(기념물(紀念物))로써 사적(史蹟) 제(弟)305호(號)로 지정(指定)하였다. 조식유적(曺植遺跡)은 크게 산천재권역(山天齋圈域)(사리(絲里))와 약 1km 서방(西方)에 떨어져 있는 덕천서원권역(德川書院圈域)(원리(院里))으로 나뉘어지고, 전자(前者)는 다시 강변(江邊)에 자리한 산천재(山天齋)와 그 외(外)의 유적(遺跡)이 진주(晋州)∼지리산간대로(智異山間大路)로 인(因)해 양분(兩分)되어 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조선 중기의 유명한 유학자인 남명 조식의 유적이다. 조식 선생은 많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거절하고,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평생을 보냈다. 이 유적은 두 곳으로 나뉘는데, 사리(絲里)에는 산천재, 별묘, ...
지리산국립공원(산청), 2km
주소 : 경남 산청군 시천면 , 삼장면
문의 : 055-972-2114
지리산국립공원은 1967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471,758㎢로서 3개 도, 1개 시, 4개 군에 걸쳐있다. 천왕봉(1,915m)을 정점으로 남북 방향으로 수많은 능선과 계곡이 교차하고 전국 유명사찰이 밀집되어 문화유산의 보고라 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보존된 원시림과 야생동물의 보고로써 신비로운 위엄을 갖추고 있는 신성한 산으로 알려져 있다.※ 봄철 야생화 개화시기 및 장소 복수초의 개화시기 및 장소 주요야생화 개화시기 개화장소 복수초 3월 초 중산리
출처 : 한국관광공사지리산국립공원은 1967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471,758㎢로서 3개 도, 1개 시, 4개 군에 걸쳐있다. 천왕봉(1,915m)을 정점으로 남북 방향으로 수많은 능선과 계곡이 교차하고 전국 유명...
산청덕천서원, 2.3km
주소 : 경남 산청군 시천면 원리 222-3
조선선조 9년(1576)에 사람들이 남명 조식(南冥 曹植)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그가 강학하던 자리에 세운 것이다. 광해군 원년(1609)에는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으나 대원군때 철폐되었고 그 후 1930년대에 다시 재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남명 조식선생은 연산군 7년(1501) 합천(陜川)군 삼가(三嘉)에서 출생하였고 55세 때 단성(丹城)현감의 직에 부름을 받았으나, 사양하였다. 61세에 이곳 덕산(德山)에 들어와 강학하다 72세 때인 선조 5년(1572) 2월28일 별세하였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조선선조 9년(1576)에 사람들이 남명 조식(南冥 曹植)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그가 강학하던 자리에 세운 것이다. 광해군 원년(1609)에는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으나 대원군때 철폐되었고 그 후 193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