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장 상세 정보
* 땅바닥 형태
잔디 | 데크 | 파쇄석 | 맨흙 | 기타 |
* 이용조건
화로대사용 | 동계캠핑 | 반려동물출입 |
* 편의시설
전기 | 온수 | 샤워실 | 매점 | 장작판매 |
온수샤워 | WiFi | 장비대여 | 수영장 | 운동장 |
* 주변시설
낚시 | 해수욕장 | 계곡 | 산책로 | 강 |
호수 |
* 숙박시설
카라반 | 팬션 | 방갈로 | 글램핑 |
동두천 자연휴양림은 경기 동두천시 탑동가산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온라인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데크 사이트가 총 15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매점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인근에 가볼만한 관광지는 신북 오리촌, 왕산사, 양주 회암사지가 있고, 주변에 다른 캠핑장으로 산촌오토캠핑장, 벨라캠핑장, 죠스글램핑, 돈내미농장, 7BLOCK가 있습니다.
야영장 사이트 수 | 15개 | ||
예약방식 | 온라인실시간예약 | ||
편의시설 | 전기, 매점 | ||
동계캠핑 | 가능 | ||
반려동물 출입 | 가능 | ||
땅바닥형태 | 데크 | ||
도로명주소 | 경기 동두천시 탑동가산로 1 (탑동동) | ||
전화번호 | 전화번호 보기 | ||
홈페이지 | 홈페이지로 이동 |
잔디 | 데크 | 파쇄석 | 맨흙 | 기타 |
화로대사용 | 동계캠핑 | 반려동물출입 |
전기 | 온수 | 샤워실 | 매점 | 장작판매 |
온수샤워 | WiFi | 장비대여 | 수영장 | 운동장 |
낚시 | 해수욕장 | 계곡 | 산책로 | 강 |
호수 |
카라반 | 팬션 | 방갈로 | 글램핑 |
산촌오토캠핑장은 경기 동두천시 탑동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게시판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데크, 파쇄석 사이트가 총 30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매점 등의 편의시설과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벨라캠핑장은 경기 동두천시 탑신로237번길에 위치하고 있으며 온라인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총 32개의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장비대여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죠스글램핑은 경기 동두천시 삼육사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온라인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전기, 온수, 매점, 장작판매, Wi-Fi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돈내미농장은 경기 동두천시 천보산로456번길에 위치하고 있으며 온라인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데크, 파쇄석 사이트가 총 40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장작판매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7BLOCK(세븐블럭)는 경기 포천시 해룡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온라인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총 22개의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매점, 장작판매, 장비대여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신북 오리촌, 5.6km
주소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청신로1845번길 14
왕방산은에서 발원하는 깊이울 계곡은 빼어난 풍광과 울창한 원시림이 유명하며 등산객들이 즐겨찾는 명소로 오리구이, 오리탕, 가마솥밥 등을 맛볼 수 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왕방산은에서 발원하는 깊이울 계곡은 빼어난 풍광과 울창한 원시림이 유명하며 등산객들이 즐겨찾는 명소로 오리구이, 오리탕, 가마솥밥 등을 맛볼 수 있다.
왕산사, 5.7km
주소 : 경기 포천시 신읍동 산 52번지
포천의 진산으로 불리우는 왕방산(王訪山)에는 천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왕산사(王山寺)가 자리하고 있다. 일찍이 도선국사가 절을 창건하고 이곳에 머물러 계실 때, 국왕이 친히 멀리까지 행차하여 친견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세월이 흘러 조선시대에도 왕위에서 물러난 조선 태조가 한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왕자들의 골육상쟁 소식을 듣고 마음을 달래기 위해 왕방사(지금의 왕산사)에 며칠 동안 머무르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로 인해 왕산사(王山寺)는 경기도 포천시 신읍동 산52번지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산 이름조차 왕방산이라 불렸으며, 왕산사는 시대는 다르지만 왕이 찾아와 머문 사찰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사찰의 역사는 희미해져 청매(靑梅)스님의 중건이 있기까지는 어떻게 법등을 이어왔는지 알 수없는 지경이 되기도 했다. 청매스님은 해방이후 폐허나 마찬가지였던 곳을 오늘의 모습이 되도록 큰 힘을 기울여 오신 분이시다. 이렇게 청매스님에 의해 법등을 잇게 된 이후 근래에 들어 법해스님이 옛 이름을 쫒아 왕산사로 바꿔 사찰의 면모를 일신하는 10년 중창불사 계획을 발원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새로운 대웅전 건립을 위한 터를 마련하였으며, 미륵전 참배객을 위한 공간 확보와 불자들의 수행진작을 위한 시민선방 등을 건립할 계획이라 한다. 이러한 중창불사가 완료되면 왕산사는 그 옛날의 위용을 되찾는 한편 포천의 으뜸도량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포천의 진산으로 불리우는 왕방산(王訪山)에는 천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왕산사(王山寺)가 자리하고 있다. 일찍이 도선국사가 절을 창건하고 이곳에 머물러 계실 때, 국왕이 친히 멀리까지 행차하여 친견하...
양주 회암사지, 5.7km
주소 : 경기 양주시 회암동 산14
회암사는 고려충숙왕 15년(1328) 인도의 고승 지공화상이 창건하였고, 우왕 2년(1376) 지공의 제자인 나옹이 다시 지었으며, 조선 성종 3년(1472) 세조비 정희왕후의 명으로 삼창되어 고려 말부터 조선 초에 걸쳐 번창하였던 국찰이었다. 특히, 태조 이성계의 각별한 관심으로 나옹의 제자인 무학대사를 회암사에 머무르게 하여 불사가 있을 때마다 대신을 보내 찰례토록 하였으며, 이성계가 왕위를 물려주고 난 뒤 회암사에서 수도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태조 이성계 이후 성종3년(1472) 정희왕후가 하성부원군 정현조를 시켜 중창 시켰으나, 당시 억불숭유정책이 심화되면서부터 회암사는 여러 차례 유생의 상소와 함께 특히 명종 때 불교를 중흥하려던 문정왕후의 죽음으로 보우대사가 제주도로 유배된 이후 쇠망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으며, 이후 보우대사가 유배지에서 피살되고 덩달아 회암사 승려까지 미움을 받게 되니 200여년 동안 번성하던 회암사는 빈 집이 되어 버렸다. 이 때부터 점차 퇴폐해지기 시작하여 어느 때인지 모르게 풍상과 함께 회암사는 인멸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번성기 때 회암사의 규모는 전각이 총 262간이었고, 암자도 17개나 되었으며 또한, 모셔진 불상도 15척짜리가 7구나 있었다고 하며, 관음상도 10척이나 되어 당시 회암사는 크고 웅장하며 아름답기가 동국 제일로서 이런 절은 중국에서도 많이 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후 대사찰이 폐사되면서 순조 21년(1821년)에 이응준이란 자가 술사 조대진의 말을 듣고 이 곳 법당자리에 선친의 묘소를 옮기기 위하여 절터에 남아있던 지공과 무학의 비를 철거하였으나 이 사실이 알려지자 나라에서 두 사람을 섬으로 유배하고 순조 28년(1828)에 비를 원래의 위치에 다시 세웠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운허요하가 쓴 "천보산 회암사 대웅전 창건기"에 의하면 1828년에 탑비를 다시 세우면서 조그만 암자를 지어 가람을 수호하고, 옛 회암사를 잇게 했으며, 1922년 봉선사 주지 홍월초화상이 새로 보전을 지어 불상을 봉안하고 지공, 나옹, 무학의 세 화상의 진영을 모셨다고 한다. 이후 1977년에 호선대사가 서북쪽에 큰 법당을 지어 오늘의 회암사에 이르게 되었다. 후설에 의하면 회암사의 폐사는 빈대가 많아 불을 태워 없앤 절로도 알려져 있으며, 당파 싸움으로 인하여 소실됐다는 설도 있고 또한 절의 크기에 대해서 가마솥 안에 들어가 팥죽을 쑬 만큼 절의 규모가 컸다고 하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쌀을 씻는 함지박이 너무 커 사람이 빠져 죽어도 모를 정도였으며, 전국을 다니다가 만나는 승려들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 "회암사에서 왔다고 할 만큼 승려 수가 많았다"고 한다. 옛 회암사는 문헌상 동방의 첫째였고 우리나라의 국찰이었으나 폐허가 된 후 사지에 석벽과 기단, 계체 등 일부만 남아 있었던 것을 1964년 이곳을 국가지정 사적 제128호로 지정하여 보존.관리해오다가 1996년부터 우회도로 개설과 사지에 대한 장기적인 조사. 발굴 계획을 수립하여 현재 경기도 박물관에서 조사. 발굴하고 있으며, 앞으로 사적지내 사유지를 매입하고 원형 그대로 발굴한 후 문화와 역사적 가치창출로 지역의 전통문화를 활성화시키고 역사적 교훈이 될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계획으로 있다. * 문화재 회암사지 선각왕사비(보물 제 387호), 회암사지 부도 (보물 제388호), 회암사지 쌍사자석등 (보물 제389호), 회암사지 멧돌 (경기도 민속자료 제1호), 지공선사 부도 및 석등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49호),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50호), 무학대사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1호), 회암사지 부도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52호), 회암사지 당간지주 (향토유적 제13호)
출처 : 한국관광공사회암사는 고려충숙왕 15년(1328) 인도의 고승 지공화상이 창건하였고, 우왕 2년(1376) 지공의 제자인 나옹이 다시 지었으며, 조선 성종 3년(1472) 세조비 정희왕후의 명으로 삼창되어 고려 말부터 조선 초에 걸쳐 번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