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장 상세 정보
* 땅바닥 형태
잔디 | 데크 | 파쇄석 | 맨흙 | 기타 |
* 이용조건
화로대사용 | 동계캠핑 | 반려동물출입 |
* 편의시설
전기 | 온수 | 샤워실 | 매점 | 장작판매 |
온수샤워 | WiFi | 장비대여 | 수영장 | 운동장 |
* 주변시설
낚시 | 해수욕장 | 계곡 | 산책로 | 강 |
호수 |
* 숙박시설
카라반 | 팬션 | 방갈로 | 글램핑 |
양주 패밀리 캠핑장은 경기 양주시 부흥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온라인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파쇄석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매점, 장작판매, Wi-Fi, 장비대여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인근에 가볼만한 관광지는 동궁랜드, 양주 회암사지, 양주시가 있고, 주변에 다른 캠핑장으로 양주 탑 관광농원 글램핑장, 씨알농장, 휴리조트 캠핑장, 또바기 쉼터 캠핑장, 케렌시아캠핑장이 있습니다.
야영장 사이트 수 | 전화문의 | ||
자동차 야영장 개수 | 18개 | ||
예약방식 | 온라인실시간예약 | ||
편의시설 | 전기, 온수, 매점, 장작판매, Wi-Fi, 장비대여 | ||
동계캠핑 | 가능 | ||
반려동물 출입 | 가능 | ||
땅바닥형태 | 파쇄석 | ||
도로명주소 | 경기 양주시 부흥로 2191-46 (삼숭동) | ||
전화번호 | 전화문의 |
잔디 | 데크 | 파쇄석 | 맨흙 | 기타 |
화로대사용 | 동계캠핑 | 반려동물출입 |
전기 | 온수 | 샤워실 | 매점 | 장작판매 |
온수샤워 | WiFi | 장비대여 | 수영장 | 운동장 |
낚시 | 해수욕장 | 계곡 | 산책로 | 강 |
호수 |
카라반 | 팬션 | 방갈로 | 글램핑 |
양주 탑 관광농원 글램핑장은 경기 양주시 어하고개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씨알농장은 경기 양주시 광사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파쇄석, 맨흙 사이트가 총 150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매점, 장작판매 등의 편의시설과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휴리조트 캠핑장은 경기 양주시 만송로366번길에 위치하고 있으며 온라인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데크, 파쇄석 사이트가 총 106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장비대여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또바기 쉼터 캠핑장은 경기 양주시 광사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파쇄석 사이트가 총 50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매점, 장작판매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케렌시아캠핑장은 경기 양주시 화합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궁랜드, 3.5km
주소 :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호국로479번길 6
문의 : 031-541-1397
경기도 포천시에 위치한 동궁랜드는 전통 불가마와 현대기술을 접목시켜 개발한 숯가마와 참숯굴 찜질과 숯탕, 해수탕등을 즐길 수 있다. 또한 넓은 주차장과 수면실 시설을 비롯하여 맛있는 먹거리를 위한 식당, 노래방, 영화 관람실, 뷰티샵, 이용원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피로하고 지친 현대인들의 휴식공간으로 적합하다. 특히 모든 시설물들을 천연재료로 시공하여 건강과 휴식을 제공하고 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경기도 포천시에 위치한 동궁랜드는 전통 불가마와 현대기술을 접목시켜 개발한 숯가마와 참숯굴 찜질과 숯탕, 해수탕등을 즐길 수 있다. 또한 넓은 주차장과 수면실 시설을 비롯하여 맛있는 먹거리를 위한 식...
양주 회암사지, 4.1km
주소 : 경기 양주시 회암동 산14
회암사는 고려충숙왕 15년(1328) 인도의 고승 지공화상이 창건하였고, 우왕 2년(1376) 지공의 제자인 나옹이 다시 지었으며, 조선 성종 3년(1472) 세조비 정희왕후의 명으로 삼창되어 고려 말부터 조선 초에 걸쳐 번창하였던 국찰이었다. 특히, 태조 이성계의 각별한 관심으로 나옹의 제자인 무학대사를 회암사에 머무르게 하여 불사가 있을 때마다 대신을 보내 찰례토록 하였으며, 이성계가 왕위를 물려주고 난 뒤 회암사에서 수도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태조 이성계 이후 성종3년(1472) 정희왕후가 하성부원군 정현조를 시켜 중창 시켰으나, 당시 억불숭유정책이 심화되면서부터 회암사는 여러 차례 유생의 상소와 함께 특히 명종 때 불교를 중흥하려던 문정왕후의 죽음으로 보우대사가 제주도로 유배된 이후 쇠망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으며, 이후 보우대사가 유배지에서 피살되고 덩달아 회암사 승려까지 미움을 받게 되니 200여년 동안 번성하던 회암사는 빈 집이 되어 버렸다. 이 때부터 점차 퇴폐해지기 시작하여 어느 때인지 모르게 풍상과 함께 회암사는 인멸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번성기 때 회암사의 규모는 전각이 총 262간이었고, 암자도 17개나 되었으며 또한, 모셔진 불상도 15척짜리가 7구나 있었다고 하며, 관음상도 10척이나 되어 당시 회암사는 크고 웅장하며 아름답기가 동국 제일로서 이런 절은 중국에서도 많이 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후 대사찰이 폐사되면서 순조 21년(1821년)에 이응준이란 자가 술사 조대진의 말을 듣고 이 곳 법당자리에 선친의 묘소를 옮기기 위하여 절터에 남아있던 지공과 무학의 비를 철거하였으나 이 사실이 알려지자 나라에서 두 사람을 섬으로 유배하고 순조 28년(1828)에 비를 원래의 위치에 다시 세웠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운허요하가 쓴 "천보산 회암사 대웅전 창건기"에 의하면 1828년에 탑비를 다시 세우면서 조그만 암자를 지어 가람을 수호하고, 옛 회암사를 잇게 했으며, 1922년 봉선사 주지 홍월초화상이 새로 보전을 지어 불상을 봉안하고 지공, 나옹, 무학의 세 화상의 진영을 모셨다고 한다. 이후 1977년에 호선대사가 서북쪽에 큰 법당을 지어 오늘의 회암사에 이르게 되었다. 후설에 의하면 회암사의 폐사는 빈대가 많아 불을 태워 없앤 절로도 알려져 있으며, 당파 싸움으로 인하여 소실됐다는 설도 있고 또한 절의 크기에 대해서 가마솥 안에 들어가 팥죽을 쑬 만큼 절의 규모가 컸다고 하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쌀을 씻는 함지박이 너무 커 사람이 빠져 죽어도 모를 정도였으며, 전국을 다니다가 만나는 승려들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 "회암사에서 왔다고 할 만큼 승려 수가 많았다"고 한다. 옛 회암사는 문헌상 동방의 첫째였고 우리나라의 국찰이었으나 폐허가 된 후 사지에 석벽과 기단, 계체 등 일부만 남아 있었던 것을 1964년 이곳을 국가지정 사적 제128호로 지정하여 보존.관리해오다가 1996년부터 우회도로 개설과 사지에 대한 장기적인 조사. 발굴 계획을 수립하여 현재 경기도 박물관에서 조사. 발굴하고 있으며, 앞으로 사적지내 사유지를 매입하고 원형 그대로 발굴한 후 문화와 역사적 가치창출로 지역의 전통문화를 활성화시키고 역사적 교훈이 될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계획으로 있다. * 문화재 회암사지 선각왕사비(보물 제 387호), 회암사지 부도 (보물 제388호), 회암사지 쌍사자석등 (보물 제389호), 회암사지 멧돌 (경기도 민속자료 제1호), 지공선사 부도 및 석등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49호),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50호), 무학대사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1호), 회암사지 부도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52호), 회암사지 당간지주 (향토유적 제13호)
출처 : 한국관광공사회암사는 고려충숙왕 15년(1328) 인도의 고승 지공화상이 창건하였고, 우왕 2년(1376) 지공의 제자인 나옹이 다시 지었으며, 조선 성종 3년(1472) 세조비 정희왕후의 명으로 삼창되어 고려 말부터 조선 초에 걸쳐 번창...
양주시, 5.1km
주소 : 경기도 양주시
문의 : 031-8082-4114
경기도의 중앙 북부에 자리잡고 있다. 동쪽은 포천군,서쪽은 파주시와 고양시, 남쪽은 서울특별시와 의정부시, 북쪽은 연천군, 북동쪽은 동두천시와 연천군에 접하고 있다. 2003년 10월 19일 시로 승격되었며 면적은 310.21㎢, 인구는 199,674명(2013 3월말 기준)이다. 행정구역은 1읍 4면 6동이 있으며, 시청 소재지는 양주시 남방동 1-1번지에 있다. * 자연환경 서울과 원산을 잇는 추가령지구대의 남부에 위치하여 시의 대부분이 산지를 이루며 그 사이에 좁은 저지대가 길게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발달하였다. 천보산이 그 주축을 이루며 포천시과의 경계를 이룬다. 서쪽은 두 줄기의 산지로 이루어지는데 안쪽은 마차산, 도락산, 불국산 등의 해발 400m 내외의 산지이고, 그 바깥쪽으로는 감악산, 노고산 등 높은 산들이 있다. 이 동서산지 사이에 있는 좁은 저지대를 청담천과 신천이 흐르면서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모아 북류하다가 한탄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과 노고산 줄기에서 시작하는 곡릉천이 장흥면을 관통하면서 자연발생유원지가 생성되어 많은 도심인구가 몰려들고 있다. * 역사 고대 - 고구려 장수왕 때 매성군으로 불렀고 757년(경덕왕16) 내소군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 태조 때 내소군을 견주로 개칭하고 한양군을 양주로 개칭하였다. 문종은 양주를 남경이라 하고 새로운 궁을 지었으며 1308년(충렬왕34)에는 양주를 한양부로 개칭했다. 조선 - 1395년(태조4) 양주부로 승격되었고, 1397년(태조6) 다시 부치가 견주로 이전되고 그 뒤 계속 양주라 하다가, 1413년(태종13) 도호부로 승격되었 으며, 1466년(세조12)에 목으로 승격되었고 성종2년에는 지방의 12개 주요거점도시를 의미하는 12목의 하나로 대단휘 행정 구역인 양주목이 되었다. 근대 - 1895년에는 한성부 소속 양주군이 되었다가 1896년 경기도 양주군이 되었다. 1922년 양주면이라 개칭했다. 현대 - 1946년 파주군 남면을 편입하였으며 1973년 구리면이 읍으로, 1979년 미금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0년 양주군 중에서 구리읍, 미금읍, 별내면, 진접면, 진건면, 수동면, 화도면, 와부면을 분리하여 남양주군을 신설했다. 1981년 동두천읍이 시로 승격, 분리되었고, 1983년 은현면 상패리가 동두천시로, 백석면 영장리와 기산리가 파주군 광탄면으로 편입되었다가 1987년 파주군 광단면 기산리 일부가 백석면에 편입되었다. * 문화 민속 - 중요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된 '양주 별산대 놀이'는 주내면 유양리에서 전승되어온 가면극 중의 하나로, 경기도지방에서 널리 연희되던 대표적인 서민 오락의 하나였다. 4월 초파일, 5월 단오 같은 대소 명절 때 마을에서 연희되었는데 8과장으로 구성되어 보통 밤 10시에 시작되면 다음날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애오개산대, 노량진산대, 퇴계원산대, 송파산대 등 원래의 산대놀이와는 다른 것이라 하여 별산대로 불려왔다는 '양주별산대놀이'는 거드름춤과 깨끼춤의 몸짓으로 연극적 요소를 가미하고, 덕담과 재담으로 서민의 애환을 풍자해 왔다. 중요무형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된 양주소놀이굿은 일명 소놀음굿, 소굿, 쇠굿, 마부타령굿 등으로 불리는데, 우마 숭배와 농경 의례인 소멕이 놀이에 기원을 두고 무속의 제석거리와 마마배송굿에서 일부 자극을 받아 형성된 굿의 일종이다. 양주시 백석면 방성리에서 경사굿인 제석거리에 이어 행해지며, 단순한 농경 의례의 무속에서 벗어나 무당과 원마부, 곁마부의 대화와 타령으로 진행된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21호인 양주상여, 회다지 소리는 예로부터 소리마을로 유명한 배석면 고능말에서 이어져 오던 소리로서, 사라져가는 민속문화를 보존함으로써 무형문화재로 인정받게 되었다. 상여소리는 상두꾼의 발을 맞추는 기능을 하며, 회다지 소리는 입관 후 땅을 다지는 힘든 노동의 호흡을 고르고 흥을 돋우는 노동요 성격을 가지며 죽은이의 혼백이 좋은 곳으로 가서 편히 쉬기를 기원하는 내용과 헤어짐을 안타까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경기도의 중앙 북부에 자리잡고 있다. 동쪽은 포천군,서쪽은 파주시와 고양시, 남쪽은 서울특별시와 의정부시, 북쪽은 연천군, 북동쪽은 동두천시와 연천군에 접하고 있다. 2003년 10월 19일 시로 승격되었며 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