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장 상세 정보
* 땅바닥 형태
잔디 | 데크 | 파쇄석 | 맨흙 | 기타 |
* 이용조건
화로대사용 | 동계캠핑 | 반려동물출입 |
* 편의시설
전기 | 온수 | 샤워실 | 매점 | 장작판매 |
온수샤워 | WiFi | 장비대여 | 수영장 | 운동장 |
* 주변시설
낚시 | 해수욕장 | 계곡 | 산책로 | 강 |
호수 |
* 숙박시설
카라반 | 팬션 | 방갈로 | 글램핑 |
합강공원 오토캠핑장은 세종 세종시 연동면 태산로 에 위치하고 있으며 데크 사이트가 총 59개로 구성되어 있고, 온수,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인근에 가볼만한 관광지는 합호서원, 황룡사, 양화리 은행나무가 있고, 주변에 다른 캠핑장으로 전월산 국민여가캠핑장, 조인캠핑장, 청주시 현도오토캠핑장, 블루문 오토캠핑, 마을야영장, 침산추월이 있습니다.
야영장 사이트 수 | 59개 | ||
편의시설 | 온수,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 ||
동계캠핑 | 불가능 | ||
반려동물 출입 | 불가능 | ||
땅바닥형태 | 데크 | ||
지번주소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태산로 329 | ||
전화번호 | 044-862-5985 | ||
홈페이지 | 홈페이지로 이동 |
잔디 | 데크 | 파쇄석 | 맨흙 | 기타 |
화로대사용 | 동계캠핑 | 반려동물출입 |
전기 | 온수 | 샤워실 | 매점 | 장작판매 |
온수샤워 | WiFi | 장비대여 | 수영장 | 운동장 |
낚시 | 해수욕장 | 계곡 | 산책로 | 강 |
호수 |
카라반 | 팬션 | 방갈로 | 글램핑 |
전월산 국민여가캠핑장은 세종 연서면 갈매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온라인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데크, 파쇄석 사이트가 총 22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장비대여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조인캠핑장은 충북 청원군 남이면 부용외천3길에 위치하고 있으며 잔디, 데크 사이트가 총 26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등의 편의시설과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청주시 현도오토캠핑장은 충북 청주시 서원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블루문 오토캠핑은 세종 연서면 기와말1길에 위치하고 있으며 온라인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잔디, 파쇄석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매점, Wi-Fi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마을야영장, 침산추월은 세종 세종시 침산6길에 위치하고 있으며 데크 사이트가 총 8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장작판매, Wi-Fi, 장비대여 등의 편의시설과 운동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합호서원, 1.2km
주소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원합강1길 262-6 (합강리)
합호서원은 고려말 성리학의 선구자 문성공 안향(安向, 후에 조선 문종의 이름이 向이었으므로 이름을 고쳐 安裕라고 함)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1716년(숙종 42)에 안향의 15세손인 안경신(安景信), 안경인(安景仁), 안경정(安景精) 안경상(安景祥) 등이 수칸의 안자별묘(安子別廟)를 창건하고 매년 매년 음력 3월 3일, 9월 9일에 제사를 올린 것이 그 시초이다. 그러다가 1842년(헌종 8)에는 안향의 20세손인 안규용(安圭容) 등이 유림대표 임동승(林東昇) 등과 힘을 모아 영당과 신문 고직(창고) 건물을 세우고 제전(祭田)과 제기(祭器)도 마련하였다. 1843년(현종 9)에는 명칭을 합호서원이라고 고치고 사람의 공의로 덕재(德齋) 신천과 금서재 박광보(琴書齋 朴光輔)를 추배하여 춘추로 제향하다가 고종대에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훼철되었다. 그 후 후손들이 합호사에 건립하여 문성공의 영정만을 춘추로 향사하다가 1931년 후손 안배호(安培鎬) 등이 유림의 동의를 얻어 서원을 복설하기로 협의하던 중에 안현호, 안봉호, 안승헌 등이 계속 건물을 증축하였다. 1949년 전국 218항교의 동의를 얻은 후 서원을 복설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 연기유림회의 주관으로 음력 9월 12일 문성공 위일을 기하여 향사하고 있다. 서원은 낮은 구릉상에 건축되어 있는데 외삼문, 재실(齋室)과 창고, 내삼문, 사우의 순으로 건물을 배치하였다. 평지보다 높게 조영되어 계단 위에 조성된 외삼문은 솟을대문의 형식르호 위에는 흥학문이란 현액을 걸어놓았다. 성의재(成意齋)는 정면4간·측면 2간의 전퇴식 건물로 팔짝지붕이고 최근에 건축된 것으로 보여진다. 바로 옆에 있는 창고는 전사청(典祀廳)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정면 2간·측면 1간의 맞배지붕이다. 내삼문도 계단위 에 설치된 솟을대문으로, 중앙에 합호서원이라는 현액을 걸어 놓았다. 내삼문 내부에는 안향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사우건물이 있는데 정면 3간·측면 2간의 건물로 정돈된 화강암기단을 높게 쌓고 화강석재의 원형초석 위에 워주를 세웠다. 측면은 반담시설이 되어 있으며, 초익공에 겹처마양식으로 맞배지붕을 올렸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합호서원은 고려말 성리학의 선구자 문성공 안향(安向, 후에 조선 문종의 이름이 向이었으므로 이름을 고쳐 安裕라고 함)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1716년(숙종 42)에 안향의 15세손인 안경신(安景信), 안경인(安景仁),...
황룡사, 1.5km
주소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황우재길 22-17
* 황희의 후손이 창건한 사찰, 황룡사 * 한불교 태고종에 속하는 사찰이다. 창건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조선 중기 당쟁(黨爭)을 피해 낙향한 황희(黃喜;1363~1462년)의 후손들이 나라의 태평성대와 가문의 번창을 기원하기 위한 원찰로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황희의 후손들이 대대로 사찰을 가꾸어 왔으나 어느 때부터인가 퇴락하면서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현존 사찰은 모두 근래에 들어와 재건한 것이다. 1935년에 대대로 전해져오는 얘기에 따른 옛 절터에 황희의 후손인 진허 현명(震虛賢明) 스님이 관음전과 산신각, 요사 등을 지으며 중창하였다. 하지만 이 건물들도 현재는 전하지 않고 있다. 진허스님 이후 현재의 법인스님이 1985년부터 절을 중창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 안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관음전과 삼성각, 범종루 등의 전각이 있으며, 그 외에 대웅전 앞 삼층석탑과 삼세불 등이 새로 조성되어 있다. 절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로는 삼세불 옆에 있는 관세음보살 입상으로 약 100년 전쯤에 조성된 것이라 한다. * 황룡사의 창건과 역사 * 창건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조선 중기 당쟁을 피해 낙향한 황희(黃喜;1363~1462)의 후손들이 나라의 태평성대와 가문의 번창을 기원하기 위한 원찰로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황희의 후손들이 대대로 사찰을 가꾸어 왔으나 어느 때부터인가 퇴락하면서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나 『여지도서(輿地圖書)』, 『가람고(伽藍攷)』 등의 문헌이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와 조선후기의 읍지를 포함한 각종 지도에도 황룡사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이미 퇴락한 상황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근 래에 들어와 황희의 후손인 진허현명 스님이 1935년에 대대로 전해져오는 이야기에 따라 옛 절터에 관음전과 산신각, 요사 등을 지으며 중창하였다. 이 건물들은 현재 전하지 않고 있으며, 지금의 관음전과 종루, 삼성각이 위치한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진허스님 이후 현재의 법인스님에 이르기까지 역대 주지는 모두 황희의 후손인 황씨(黃氏)가 맡고 있다고 한다. 1985년부터 현 주지 스님인 법인 스님이 대웅전과 요사를 신축하였다. 1991년 9월에는 스리랑카에서 진신사리 1과를 모셔와 삼층석탑을 세워 봉안하였다. 2001년에는 관음전을 비롯한 삼성각과 종루를 조성하였다. 최근에 들어와서는 석가불과 비로자나불, 노사나불의 삼세불(三世佛)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삼세불 옆에 있는 관세음보살 입상은 약 100년 전쯤에 조성된 것이라 하는데, 현재 황룡사에서 가장 오래된 유구이다. 천불전(千佛殿) 조성불사를 계획 중이며, 설법전을 비롯한 강원과 선방 등을 새로 조성할 계획이라 한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황희의 후손이 창건한 사찰, 황룡사 * 한불교 태고종에 속하는 사찰이다. 창건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조선 중기 당쟁(黨爭)을 피해 낙향한 황희(黃喜;1363~1462년)의 후손들이 나라의 태평성...
양화리 은행나무, 4.2km
주소 : 세종특별자치시 남면 양화리 88-5
양화리 마을 앞에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이것은 고려말에 이곳으로 낙향한 전서(典書) 林蘭秀가 심은 것으로 압각(鴨脚)이라 부른다. 그는 이성계가 왕이 되자 벼슬도 마다하고 낙향하여 암수 두 그루의 은행나무를 심고 낚시로 소일하며 지냈다. 어느 해인가 일본 사람에게 이 은행나무를 팔았는데 일본 사람들이 나무를 베려고 하자, 나무가 '웅' 소리를 내고 울어 베지 못했다고 한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양화리 마을 앞에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이것은 고려말에 이곳으로 낙향한 전서(典書) 林蘭秀가 심은 것으로 압각(鴨脚)이라 부른다. 그는 이성계가 왕이 되자 벼슬도 마다하고 낙향하여 암수 두 그루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