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
* 수 십 척의 바위가 만든 자연의 문, 석문 * 도담삼봉에서 상류로 200m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왼쪽 강변으로 수십 척에 달하는 무지개 모양의 석주가 나타나는데 이것이 바로 석문이다. 석문은 두 개의 커다란 바위기둥을 또 하나의 바위가 가로질러 천연의 문을 이룬 기암가경이다. 이러한 장관으로 인해 석문은 단양팔경 중 제2경에 속한다. 석문 왼쪽에 석굴이 있고 석







산 주요 정보
| 지번주소 | 충청북도 단양군 매포읍 삼봉로 644-13 (매포읍) | ||
| 전화번호 | 043-420-3114 | ||
| 홈페이지 | 홈페이지로 이동 | ||
주변 관광지 3개
주변 캠핑장 5개

단양팔경투어는 충북 단양군 단양읍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화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포레스트힐링캠프는 충북 단양군 가곡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화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데크, 파쇄석 사이트가 총 21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매점, 장작판매, 장비대여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노동오토캠핑장은 충북 단양군 단양읍에 위치하고 있으며 잔디, 데크 사이트가 총 12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등의 편의시설과 운동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소백산오토캠핑장은 충북 단양군 가곡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온라인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전기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가리점캠핑장은 충북 단양군 단양읍에 위치하고 있으며 온라인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총 5개의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매점, 장작판매, Wi-Fi 등의 편의시설과 운동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도담삼봉, 454m
주소 : 충청북도 단양군 매포읍 삼봉로 644-13
* 강에 솟아있는 세 가지의 봉우리, 도담삼봉 * 남한강의 맑고 푸른 물이 유유히 흐르는 강 한가운데 위치한 도담삼봉. 늠름한 장군봉(남편봉)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교태를 머금은 첩봉(딸봉)과 오른쪽은 얌전하게 돌아앉은 처봉(아들봉) 등 세 봉우리가 물 위에 솟아 있다. 이곳은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할 만큼 젊은 시절을 이곳에서 청유하였다 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아들을 얻기 위해 첩을 둔 남편을 미워하여 돌아앉은 본처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살펴볼수록 그 생김새와 이름이 잘 어울려 선조들의 지혜와 상상력이 감탄스럽다. 그리고 장군봉에는 '삼도정'이라는 육각정자가 있는데, 일찍이 퇴계 선생은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석양의 도담석양엔 저녘놀 드리웠네 신선의 뗏목을 취벽에 기대고 잘적에 별빛달빛 아래 금빛파도 너울지더라"는 주옥같은 시 한 수를 남겼다. 도담삼봉 주변에는 1998년 음악분수대가 설치되어, 도담삼봉과 석문을 찾는 관광객이 피로를 풀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되어 있고 특히 야간에 분수대에서 춤을 추는 듯한 물줄기는 한층 더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 삼봉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 * 삼봉은 원래 강원도 정선군의 삼봉산이 홍수 때 떠내려와 지금의 도담삼봉이 되었으며 그 이후 매년 단양에서는 정선군에 세금을 내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어린 소년 정도전이 "우리가 삼봉을 떠내려 오라한 것도 아니요.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어 아무 소용이 없는 봉우리에 세금을 낼 이유가 없으니 필요하면 도로 가져가라"고 한 뒤부터 세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강에 솟아있는 세 가지의 봉우리, 도담삼봉 * 남한강의 맑고 푸른 물이 유유히 흐르는 강 한가운데 위치한 도담삼봉. 늠름한 장군봉(남편봉)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교태를 머금은 첩봉(딸봉)과 오른쪽은 얌전하게...
단양 적성, 6.7km
주소 : 충북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산3-1
* 삼국시대의 전략적 요충지, 적성산성 * 단양 성재산에 있는 돌로 쌓아 만든 산성이다. 주위가 약 900m이나 대부분 붕괴되고, 북동쪽에는 안팎으로 겹쳐 쌓은 부분의 안쪽 성벽이 일부 남아있다. 적성산성은 성재산 봉우리와 남쪽 비탈을 빙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 1979년 8월 1일 사적 제 265호로 지정되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 호서읍지 단양군지 위지 표기로는 주 1,768척이 있었다고 한다. 성의 둘레는 923m이고, 현재 성벽은 대부분 무너졌다. 북동쪽 끝에 높이 3m 가량의 성벽이 비교적 잘 남아있다. 성문 자리는 남서쪽, 동쪽, 남동쪽 등 세 곳에서 발견되었다. 성내에는 적성비가 있다. 고구려군이 차지하였던 것을 신라군이 빼앗아 북진정책의 전초기지를 구축한 곳으로, 일명 적산성이라고도 한다. * 적성산성의 역사적 의의 * 1978년 성내에서 적성비가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신라와 고구려의 세력관계 변동을 알 수 있다. 비석 외에 삼국시대의 토기조각과 기왓조각도 발견되고 있으며, 고려시대의 유물도 있어 대략 고려 후기까지 오늘날의 단양지방을 다스리는 읍성의 구실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성내에서는 신라 및 백제의 토기편, 고려조의 청자편과 와편이 발견되었으며, 축성방법이 매우 견고하게 되어 있어, 신라의 축성술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삼국시대의 전략적 요충지, 적성산성 * 단양 성재산에 있는 돌로 쌓아 만든 산성이다. 주위가 약 900m이나 대부분 붕괴되고, 북동쪽에는 안팎으로 겹쳐 쌓은 부분의 안쪽 성벽이 일부 남아있다. 적성산성은 성재...
단양 신라 적성비, 6.7km
주소 : 충북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산3-1
국보 제 198호로서, 1978년 적성산성에서 발견되었으며 신라 제 24대 진흥왕이 고구려땅을 점령하고 그 곳 주민에게 교시, 선무한 비이다. 높이93cm, 폭107cm, 두께 25cm인 이 비는 세조각으로 갈라진 반석 중 하단부의 두 조각으로 당시의 인명, 지명, 관직명 등을 밝혀주는 280여 글자가 음각되어 있으며 상단부의 100자 가량은 없어졌다. 이 비의 발견으로 당시 신라의 영토 확장과 신라의 유력 인물, 정복지 포섭정책, 당시의 관직, 관등, 율령 반포에 대한 중요한 사실 등을 알수 있어 학술적인 자료로 중요시되고 있다. 적성 위에서 남한강이 잘 전망되므로 이곳이 삼국 시대에는 요새의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국보 제 198호로서, 1978년 적성산성에서 발견되었으며 신라 제 24대 진흥왕이 고구려땅을 점령하고 그 곳 주민에게 교시, 선무한 비이다. 높이93cm, 폭107cm, 두께 25cm인 이 비는 세조각으로 갈라진 반석 중 하단부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