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 고창 들녘에 우뚝 솟은 신령스런 산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무송리와 산수리,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고창현, 흥덕현, 무장현을 합하여서 고창군이 되었는데, 고산은 무장현에서 제일 높다고 하여 고산이라 부르고 있다. 고산의 높이는 528m이다. 호남정맥 내장산 까치봉과 백암산 사이의 순창새재에서 서쪽으로 분기한 영
산 주요 정보
| 지번주소 | 전북 고창군 대산면 상금리 | ||
| 전화번호 | 063-560-2457 | ||
| 홈페이지 | 홈페이지로 이동 | ||
주변 관광지 2개
주변 캠핑장 5개

솔내음 물댄동산 야영장은 전남 장성군 삼계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온라인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OK가족캠핑장은 전남 영광군 대마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기타 사이트가 총 25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매점, 장작판매, Wi-Fi, 장비대여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옛서당캠핑농원은 전남 장성군 삼계면 화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파쇄석 사이트가 총 15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용매골 대화레저 관광농원은 전남 장성군 삼계면 화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화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총 60개의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전기,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매점 등의 편의시설과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에코힐캠핑장은 전남 장성군 삼계면 화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60개의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전기,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홍길동 생가, 6.9km
주소 :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홍길동로 431
홍길동은 한국인을 대표하는 민중 영웅이다. 역사상의 실존인물이며 허구적 소설의 주인공이다. 역사에서는 반역자, 또는 강도로 기록되어 있으나, 소설에서는 봉건제도에 맞서 만민평등의 이념으로 활빈당을 이끌고, 이상국인 일본 오키나와의 율도국을 건설한 인물이다. 역사상 홍길동은 조선 초 15세기 중엽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났으나 신분이 첩의 자식이라 관리등용을 제한하는 국법 때문에 출세의 길이 막혔다. 좌절과 울분 속에서 출가하여 양반으로부터 차별받던 소외된 민중을 규합하여 활빈당을 결성한 후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실천적 삶을 살았다. 그러나 봉건적 조선왕조의 핍박을 받던 중 관군에 체포되어 남해로 유배되었으나 탈출하여 무리를 이끌고 오키나와로 진출하였다. 그곳에서 조선에서처럼 민중을 대변하는 민권운동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동안 홍길동의 역사적 실체가 왜곡됐으나, 이 문제를 바로 잡으려는 홍길동 연구팀(장성군, 연세대학교국학연구회, 전남매일, 유구대학, 오키나와관광국, 석원도문화원)의 3년에 걸친 끈질긴 노력 끝에 그 베일에 싸인 비밀이 밝혀졌다. 조선에서 뱃길로 3000리나 떨어진 일본 최남단의 섬 오키나와에서 후반부 삶을 살았던 그곳에는 민권운동의 선구자 홍길동을 추모하는 기념비가 서 있다. 이러한 홍길동의 생애 전반에 걸친 학술연구의 성과가 총체적으로 정리되었으며 500여 년 전의 일본과 한국 간의 교류사를 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에 장성군은 홍길동 생가터 주변에 18,843m²(5,700여 평)의 부지를 사들였으며, 생가터 발굴 작업 및 철저한 고증을 거쳐 생가를 복원하였고 2004년 5월 3일 홍길동 전시관을 개관하여 새로운 관광지로 발전하고 있다. * 건물 - 211.37㎡ / 안채(한식기와) 132.23m²(40평), 아래채(초가) 16.52m²(5평), 사랑채 29.75m²(9평), 문간채 33.05m²(10평) * 구조 - 전통한식 목구조 * 조선시대 생활상 전시 - 100여점
출처 : 한국관광공사홍길동은 한국인을 대표하는 민중 영웅이다. 역사상의 실존인물이며 허구적 소설의 주인공이다. 역사에서는 반역자, 또는 강도로 기록되어 있으나, 소설에서는 봉건제도에 맞서 만민평등의 이념으로 활빈당을 ...
장성 필암서원, 9.7km
주소 :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필암서원로 184
문의 : 061-394-0833
황룡면 필암리에 위치한 필암서원(사적지 제 242호)은 1590년 하서 김인후(1510-1560)의 후학과 호남 유림들이 중심이 되어 건립되었으며,1786년 하서의 사위이자 문인인 고암 양자징(1523-1594)을 추배하였다. 특히 필암서원은 1659년 필암으로 사액을 받았으며, 하서 김인후 선생은 호남에서 유일하게 문묘에 배향된 점에서도 이 지역의 선비 문화를 대표하는 서원이다. 그리 높지 않은 유민산이 뒤를 감싸고 있는 가운데 평지에 자리잡은 필암서원은 선현에 대한 제사 공간과 교육 및 학문 수련의 공간, 휴식공간 그밖에 장서 보관 기타시설 등 조선시대 서원의 기본구조를 잘 갖추고 있다. 특히 확연루의 현판 글씨는 우암 송시열이 직접 쓴 글이다. 필암서원은 옛 규모를 잘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보물 제 587호로 지정된 고문서(노비보, 원장선생안, 집강안, 원적, 봉심록, 서원성책 등)와 인종이 하서 선생에게 하사했다는 묵죽도, 하서유묵 등 60여건의 자료가 여전히 남아있다.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958개 서원 중 47개소만 남게 되었는데 그 중 미훼철 서원이며, 일제시대나 6.25사변 때에도 피해를 면한 서원이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황룡면 필암리에 위치한 필암서원(사적지 제 242호)은 1590년 하서 김인후(1510-1560)의 후학과 호남 유림들이 중심이 되어 건립되었으며,1786년 하서의 사위이자 문인인 고암 양자징(1523-1594)을 추배하였다. 특히 필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