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두물머리
* 영화촬영지로 자주 쓰이는 아름다운 장소, 두물머리와 느티나무 *
두물머리[兩水里]는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북한강과
강원도 금대봉 기슭 검룡소(儉龍沼)에서 발원한 남한강의 두 물이 합쳐지는 곳이라는
의미이며 한자로는 '兩水里'를 쓰는데, 이곳은 양수리에서도 나루터를 중심으로 한
장소를 가리킨다. TV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진 곳이며 결혼기념 사진 촬











주요 정보
지번주소 | 경기 양평군 양서면 양수1리 | ||
전화번호 | 031-773-5101 | ||
홈페이지 | 홈페이지로 이동 |
주변 관광지 3개
주변 캠핑장 5개
빨간집 야영장은 경기 양평군 양서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잔디 사이트가 총 10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장작판매, Wi-Fi, 장비대여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마현리오토캠핑장은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잔디 사이트가 총 12개로 구성되어 있고,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카리스타 캠핑장은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게시판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총 9개의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장비대여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산귀래 식물원 캠핑장은 경기 양평군 양서면 목왕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잔디, 파쇄석, 맨흙 사이트가 총 30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장작판매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깊은 산속 옹달샘은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진중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맨흙 사이트가 총 34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장작판매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세미원, 819m
주소 : 경기 양평군 양서면 양수로 93
* 물과 꽃들이 함께 하고 있는 세미원 * 세미원은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용담리에 있는 자연정화공원이다. 세미원의 어원은 물을 보면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면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는(觀水洗心 觀花美心) 옛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말씀과 걸맞게 세미원은 흐르는 한강물을 보면서 마음을 깨끗이 씻어내자는 상징적인 의미로 모든 길을 빨래판으로 조성하였고, 수련과 연꽃들을 보고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장소가 되길 바라면서 선조들이 연꽃을 보고 마음에 느낀 바를 읊은 시와 그림들을 함께 전시하였다. 또한, 세미원은 대표적인 수생식물을 이용한 자연정화공원으로서, 경기도로부터 약 100억 원의 자금을 지원받아 조성하였다. 면적 18만㎡ 규모에 연못 6개를 설치하여 연꽃과 수련·창포를 심어놓고 6개의 연못을 거쳐간 한강물은 중금속과 부유물질이 거의 제거된 뒤 팔당댐으로 흘러들어가도록 구성하였다. * 세미원의 볼거리들 * 공원은 크게 세미원과 석창원으로 구분되는데, 세미원에는 100여 종의 수련을 심어놓은 세계수련원·수생식물의 환경정화 능력을 실험하고 현상을 교육하는 환경교육장소·수련과 연꽃의 새로운 품종을 도입하여 실험하는 시험재배단지 등이 있다. 이와 함께 항아리 모양의 분수대인 한강 청정 기원제단·두물머리를 내려다보는 관란대(觀瀾臺)·프랑스 화가 모네의 흔적을 담은 ‘모네의 정원’·풍류가 있는 전통 정원시설을 재현한 유상곡수(流觴曲水)·‘수표(水標)’를 복원한 분수대·바람의 방향을 살피는 기후관측기구인 풍기대 등도 있다. 석창포 온실인 석창원에는 수레형 정자인 사륜정과 조선 정조 때 창덕궁 안에 있던 온실 등이 전시되어, 조상들이 자연환경을 지혜롭게 이용하였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물과 꽃들이 함께 하고 있는 세미원 * 세미원은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용담리에 있는 자연정화공원이다. 세미원의 어원은 물을 보면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면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는(觀水洗心 觀花美心) 옛 말씀...
정약용선생묘, 2.4km
주소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747번길 11 (조안면)
문의 : 031-590-2481
* 조선 최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묘 * 1972년 5월 4일 경기도기념물 제7호로 지정되었다. 능내리에 정약용을 모신 유택인 여유당(與猶堂)과 함께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묘는 부인 풍산홍씨와 합장한 원형의 묘로 남향하고 있고, 묘 앞에는 비좌와 비신 및 팔작지붕 모양의 옥개석을 갖춘 비가 있다. 비신에는 2열로 ‘문도공다산정약용 숙부인풍산홍씨 지묘(文度公茶山丁若鏞 淑夫人豊山洪氏 之墓)’라고 씌어 있다. 비좌는 높이 31.5㎝, 너비 129㎝, 두께 90㎝이며, 비신은 높이 179㎝, 너비 69.5㎝, 두께 34.2㎝이고, 옥개석은 높이 62㎝, 너비 119㎝, 두께 81㎝이다. 묘역 앞에는 1959년에 세운 묘비 2기와 자연석에 여유당이라 쓴 비가 서 있다. * 다산 정약용 선생에 대하여 * 다산 정약용은 조선후기의 대학자로서 1762년(영조38) 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마현마을에서 태어났다. 정약용은 어려서부터 이익의 학문을 접하였고, 이벽에세 서양서적을 얻어 읽기도 하여 실학과 서학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문과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이 되었으나 천주교인이라 하여 충청도 해미로 귀양갔다가 10일 만에 용서되어 풀려났다. 또한, 거중기와 녹로(도르래)를 만들어 수원서을 쌓는 공정을 단축하는데 크게 고헌하였다. 그 후 경기도 암행어사를 거쳐 동부승지·병조참의가 되었으나 주문모 신부의 변복 잠입 사건이 터지자 형 정약전과 함께 이 사건에 관련되어 충청도 금정찰방으로 좌천되기도 했다. 1801년(준조 1)신유박해 때 경상북도 포항 장기로 유배된 뒤에 황사영백서사건이 일어나 이 해 10월 다시 전라남도 강진으로 옮겨졌다. 이 후 오랜 유배생활에 들어가며 조선사회의 현실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여러 사상과 학문을 검토하여 조선 후기의 실학사상을 집대성하였다. 1818(준조 18) 유배생활에서 풀려난 후 마현마을 고향집으로 돌아와 저술생활로 평생을 보냈으며 1836년(현종 2) 75세로 생을 마쳤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18년의 유배기간 동안 경서학에 전념, 실학의 대가가되어 「목민심서 」48권, 「경세유표」49권, 「흠흠신거」30권 등을 쓰면서 정치·경제 등 제도의 개혁을 주장하였고 500여 권의 방대한 책을 저술하였다. 능내리의 다산유적지에 있는 정약용의 묘(경기도 기념물 제 7호)는 발치 아래를 감싸고 돌아 흐르는 두물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한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묘 앞에는 비석상과 상석, 그리고 자우에 망주석이 배열되어 있다. 봉분은 단분이며 숙부인 풍산 홍씨와의 합장묘이다. 문화관에서는 다산 정약용의 일대기를 담은 영상물을 상영하고 있으며 다산 관련 강연회와 학술발표회가 열리고 있다. 또한, 다산문화제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행사들이 사계절 내내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조선 최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묘 * 1972년 5월 4일 경기도기념물 제7호로 지정되었다. 능내리에 정약용을 모신 유택인 여유당(與猶堂)과 함께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묘는 부인 풍산홍씨와 합장한 원형의 ...
다산유적지(남양주), 2.7km
주소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747번길 11 (능내리)
문의 : 031-590-2481
* 다산 정약용의 마지막 길, 마재(마현부락)의 다산유적지 * 양수리에서 팔당댐 방향으로 약 3km 거리에 위치한 마재(마현부락)는 경기도 기념물 제7호로 지정되어 있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산소가 위치해 있으며, 아울러 다산 정약용을 비롯한 4형제의 생가터가 있는 곳이다. 마재는 그 모양이 혹처럼 불쑥 튀어나와 있어 마치 한강물을 지키는 파수꾼 같다. 마재에서 200m거리에 있는 다산유적지에는 사당과 기념관, 생가터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언덕 위에는 다산의 묘소가 있다. 이 묘소에서 내려다보면 마을과 한강을 넘어 천진암이 있는 앵자봉 계곡이 펼쳐져 있다. 마재에서는 또한 천진암 앵자봉 능선을 멀리 바라다 볼 수 있다. 그리고 지척에 천주교회의 큰 초석이 된 권철신 5형제의 집터가 있는 양근 대감 마을도 있다. * 신앙과 유배, 실학 사상으로 정리되는 다산의 삶 * 다산 정약용은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또한, 약현의 사위가 황사영, 이들 형제의 누이가 최초의 세례자 이승훈의 부인이라는 것을 보면 정씨 형제가 얼마나 천주교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들 중 정다산은 그의 형 약종처럼 순교하지는 않았으나 천수를 다하면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심서" 등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는 본래 요한이라는 세례명을 받고 10여 년간 열심히 신앙 생활을 했고, 신유박해(1801년) 때 배교함으로써 죽음을 면하고 전남 강진으로 유배를 갔다. 실학을 집대성한 5백여 권의 주옥 같은 저서는 바로 이 무렵 18년간의 유배 생활 동안 쓰여진 것이다. 유배 생활을 끝내고 다시 이곳 마재로 돌아온 그는 보속하는 뜻에서 기도와 고행의 삶을 살다 중국인 유방제 신부에게 병자 성사를 받고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다산 정약용의 마지막 길, 마재(마현부락)의 다산유적지 * 양수리에서 팔당댐 방향으로 약 3km 거리에 위치한 마재(마현부락)는 경기도 기념물 제7호로 지정되어 있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산소가 위치해 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