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
* 다양한 볼거리가 풍부한, 백마강 *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에서 발원하여 충청남․북도를 거처 강경에서부터 충청남도·전라북도의 도계를 이루면서 군산만으로 흘러드는 금강(錦江)의 하류 구간을 일컫는 명칭으로 백마강은 "백제의 제일 큰 강"이란 뜻으로 규암면 호암리 천정대에서 세도면 반조원리까지 16㎞의 금강을 일컫는다. 《삼국사기》에는 백강(白江), 《일



주요 정보
지번주소 | 충남 부여군 부여읍 | ||
전화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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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관광지 3개
주변 캠핑장 5개
백마강오토캠핑장은 충남 부여군 규암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데크, 파쇄석, 기타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매점, 장작판매, Wi-Fi, 장비대여 등의 편의시설과 운동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굿뜨래웰빙마을 글램핑(일반)는 충남 부여군 가탑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기, 온수, 장작판매, Wi-Fi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청양 동강리 오토캠핑장은 충남 청양군 청남면 천내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잔디 사이트가 총 42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가)꽃향기는 충남 부여군 은산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느루 캠핑장은 충남 부여군 장암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온라인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파쇄석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매점, 장작판매, Wi-Fi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천정대, 556m
주소 : 충남 부여군 규암면 호암리 5
* 백제 때 제상을 선출하던 곳, 천정대 * 백제 때 재상을 선출하던 곳으로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窺岩面) 호암리에 있다. 면적은 257,356㎡로 고대부터 신성시하던 곳이다. 백마강을 1.5㎞ 거슬러 올라가면 범바위라는 바위가 있는데, 이곳에서 동북쪽에 임금바위 또는 신하바위라고 부르는 바위들이 있는 곳이 천정대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보면 호암사(虎岩寺)에는 정사암(政事岩)이란 바위가 있는데, 나라에서 재상을 뽑을 적에 후보자 3, 4명의 이름을 적어 함봉(函封)하여 이곳 바위 위에 두었다가 열어보아, 이름 위에 도장이 찍혀 있는 사람을 재상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산 아래 서편 강변에 있는 동리가 바로 호암리이며 그곳에는 백제의 호암사터가 남아있다. 절벽 아래에는 임금바위,신하바위라 불리는 솟은 암반이 있다. 이 바위 위에서 임금과 신하가 각기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기원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같은 전설과 기록은 천명(天命)을 중히 여기고 그것을 받들어 정치를 베풀었음을 뜻한다. 부족사회(部族社會)로부터의 유습(遺習)이 백제 때에도 재상의 임명, 국가 중대사의 결정 등에 이용되고 있음을 알리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 천정대의 문화적 의의 * 천정대에서 임금과 신하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기원하였다는 전설이 전하는 것으로 보아 천명을 중히 여기고 이를 받들었음을 뜻한다. 또한 《동국여지승람》에는 “천정대라고 하며 현북10리에 있는데, 江北絶壁 有岩如臺 下臨江水”라고 그 위치와 경관을 설명하였는데, 이는 국가의 중대사를 논의할 때 자연 경관도 신중히 고려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천정대 자리가 산 정상에 있고 또한 침식작용을 많이 받는 바위이므로 남아 있는 유구가 없어 전모를 확인할 수 없으나 주변에서 백제시대의 연화무늬 와당과 기와조각이 출토된 적이 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백제 때 제상을 선출하던 곳, 천정대 * 백제 때 재상을 선출하던 곳으로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窺岩面) 호암리에 있다. 면적은 257,356㎡로 고대부터 신성시하던 곳이다. 백마강을 1.5㎞ 거슬러 올라가면 범...
서동공원과 궁남지, 4.6km
주소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궁남로 52
* 백제 무왕의 연못, 서동공원과 궁남지 * 궁남지(사적 제135호)는 선화공주와의 사랑으로 유명한 백제 무왕이 만들었다는 왕궁의 남쪽 별궁에 속한 우리 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으로, 『삼국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궁남지라 부른다.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무왕 35년(634)에 “궁성의 남쪽에 못을 파고 20여리나 되는 곳에서 물을 끌어 들여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고, 못 한가운데에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선산을 모방한 섬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현재의 연못은 1965~67년에 복원한 것으로, 원래 자연늪지의 1/3정도의 규모이다. 이 연못에 대해서는 『삼국사기』무왕조(武王條)에 "3월에 궁성(宮城) 남쪽에 연못을 파고 물을 20여리나 되는 긴 수로로 끌어들였으며 물가 주변의 사방에는 버드나무를 심고 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어 방장선산(方丈仙山)을 본떴다"라고 되어 있다. 사실, 백제에서 왕궁 근처에 연못을 만드는 전통은 이미 한성시대(漢城時代)부터 시작되었다. 다만, 한성시대에 조영된 왕궁에 딸린 연못은 아직 발굴된 바 없어서 그 실체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그에 비해 웅진(熊津)시대의 왕궁이었던 공산성(公山城) 안에서는 당시의 것으로 판단되는 연못이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되는 건물지(建物址)와 함께 발굴되었다. 공산성에서 발굴된 이 연못은 바닥이 좁고 위로 올라갈수록 넓어지는 원형의 연못인데 직경 7.3m, 바닥직경 4.8m, 깊이 3m의 크기를 보이고 있다. 이로써 보면 백제에서 왕궁 근처에 연못을 만드는 전통은 매우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성시대와 웅진시대의 연못은 그 자체만 확인될 뿐 여기에서와 같은 삼신산(三神山)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는다. * 궁남지의 의의 * 궁남지의 설화에 나오는 무왕이 서동이라는 것을 미루어 이곳이 별궁터였고 궁남지가 백제 왕과 깊은 관계가 있는 별궁의 연못이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백제의 정원(庭園)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한편,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궁남지의 조경(造景) 기술이 일본에 건너가 일본 조경의 원류(源流)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백제 무왕의 연못, 서동공원과 궁남지 * 궁남지(사적 제135호)는 선화공주와의 사랑으로 유명한 백제 무왕이 만들었다는 왕궁의 남쪽 별궁에 속한 우리 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으로, 『삼국사기』의 기록을 근거...
규암 나루터 (자온대), 4.9km
주소 : 충남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 옛 규암나루터 (자온대)
의자왕의 쉼터, 규암 나루터 (자온대) 규암면 옛 규암 나루터, 곧 백제대교 남쪽에 강옆으로 높이 20여m의 바위, 속칭 엿바위가 자온대로 알려져 있다.『삼국유사』,『신증동국여지승람』등에 백제 의자왕이 강 건너 왕흥사로 예불을 들이기 위해 갈 때 이곳에서 잠시 쉬면 바위가 저절로 따뜻해져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강쪽으로 돌출한 부분에 우암송시열의 글씨로 알려진 自溫臺(자온대)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규암나루의 역사 규암나루는 두 곳에 있었는데 자온대 바로 밑에는 나룻배가 운행을 하였고, 그 하류에는 강경을 왕래하는 돌배(수백 톤급의 동력선)과 상선이 사용하는 나루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신작로가 뚫리면서 버스와 차량을 실어나르는 넓적배가 운행되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는 나무배 수십 척을 연결한 배다리를 놓아서 평소에는 사람과 우마가 통행을 했으며, 홍수로 유실된 후에는 나무다리 및 철선을 연결한 철배다리를 놓아 도강을 하기도 했다. 해방을 전후해서는 규암리의 장이 부여읍내의 장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그 규모가 켰다고 한다. 규암 오일장은 3일과 8일에 열렸으며 쇠전, 모시전, 포목전, 싸전, 어물전이 주축을 이루었다고 한다. 한때 군산과 강경을 잇는 정기여객선이 규암나루까지 연장 운행되었다고 하며, 만조 때에는 바다의 물이 거슬러 올라와서 사리 때에 새우젓과 소금을 실은 큰 상선이 조수를 따라 거슬러 올라와 나루터에 정박한 채 곡식을 사가지고 내려갔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의자왕의 쉼터, 규암 나루터 (자온대) 규암면 옛 규암 나루터, 곧 백제대교 남쪽에 강옆으로 높이 20여m의 바위, 속칭 엿바위가 자온대로 알려져 있다.『삼국유사』,『신증동국여지승람』등에 백제 의자왕이 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