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댐
인공과 자연의 어우러짐, 안동댐
1971년에 착공해서 1976년에 준공되었으며 댐의
길이 612m, 높이 83m, 총 저수량은 12억4,800만톤, 발전용량 9만kw이다. 이 댐은
낙동강 하류의 홍수조절과 농업, 공업용수 및 생활용수 목적으로 건설된 다목적댐이다.
수력 발전소에서는 연간 1억 5800만㎾h의 청정 수력
에너지를 생산하여 경상북도 북부 지역에 공급하고 있다. 안
주요 정보
지번주소 | 경북 안동시 성곡동 산 164-19 | ||
전화번호 | 054-850-4204 | ||
홈페이지 | 홈페이지로 이동 |
주변 관광지 2개
주변 캠핑장 5개
솔라캠프는 경북 안동시 와룡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12개의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플레이방 월드는 경북 안동시 와룡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안동백운정 유원지는 경북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잔디 사이트가 총 10개로 구성되어 있고, 화장실, 샤워실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우니메이카 안동점은 경북 안동시 남후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온라인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파쇄석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매점, 장작판매, Wi-Fi, 장비대여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암산 유원지는 경북 안동시 남후면 광음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백운정, 9.2km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경동로 1850-97 (임하면)
* 후학 양성에 매진했던 김수일의 정자, 백운정 (白雲亭) * 백운정은 귀봉 김수일(龜峰 金守一)이 그의 부친 청계 김진(靑溪 金璡)으로부터 부지를 얻어서 1568년(선조원년)에 창건한 정자이다. <영가지> 누정조(樓亭條)에는 “판서에 증직된 김진이 세우고, 그의 아들 수일이 옛 제도에다 늘려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판 <白雲亭>은 미수(眉未) 허목(許穆, 1595∼1682) 선생의 작품이다. 귀봉 김수일은1528년 정자가 있는 1555년(명종 10)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향리(鄕里)에 남아, 1583년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수학(修學)과 후학양성(後學養成)에 힘썼다. * 백운정의 구조 * 백운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이다. 누마루는 동향으로 반변천을 굽어보게 배치하였으며 뒤쪽에 ‘ㄷ’자형 주사가 연접되어 전체적으로는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동쪽으로는 누마루 4칸을 두어 계자각 헌함을 돌렸고, 서편에 2칸통의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루상부의 가구는 5량가로 종량위에 제형판대공을 얹었는데 그 몸에 첨차를 직교로 끼워 장식하였다. 온돌방에서 누마루쪽으로 난 사분합문은 근년의 보수시에 문 높이를 원래보다 낮추어버린 듯하다. 주두에 결구된 보아지나 기타 목조의 세부에서 건립 당초에 어울리는 고격을 엿보이지 않는데, 아마도 후대의 관리나 보수시에 개체된 것으로 보인다. 주사는 서쪽에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2칸통의 온돌방과 주방의 양단에서 동쪽으로 익사를 돌출시켜서 정자와 口자형의 배치로 되어있다. 온돌방의 동측에는 안마당쪽으로 개방된 마루 1칸과 그 옆에 고방 1칸이 배치되어 있으며 정자와는 이락문(二樂門)이라 불리는 안마당으로 출입하는 널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부엌의 전면쪽 서측(우측)에는 마구간이 한간 돌출하여 있고, 동측(정자 쪽)으로는 장서실과 마루방 1칸씩이 배열되어 있으며, 정자와 마루 사이에는 토벽과 외여닫이 널문으로 이어져 있다. 따라서 주사와 정자는 기둥이나 지붕결구가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고 별동으로 되어 있다. 비록 결구세부에서 고격이 다소 상실되었다 하더라도, 건축물의 규모, 형식은 당당하며 배치 또한 요지를 택하고 있어, 정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문화재 정보] - 분 류 : 누(정)·각 - 지 정 :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75호 - 지정일 : 1986. 12. 11 - 시 대 : 조선시대 - 규 모 : 2동(정자 3×2칸, 주사 4×4칸)
출처 : 한국관광공사* 후학 양성에 매진했던 김수일의 정자, 백운정 (白雲亭) * 백운정은 귀봉 김수일(龜峰 金守一)이 그의 부친 청계 김진(靑溪 金璡)으로부터 부지를 얻어서 1568년(선조원년)에 창건한 정자이다. <영가지> 누정...
안동 의성김씨 종택, 9.3km
주소 : 경북 안동시 임하면 경동로 1949-9
* 조선시대 민가건축연구의 소중한 자료, 안동의성김씨종택 * 안동 의성김씨 종택은 의성김씨 청계(靑溪) 김진(金璡, 1500~1580)의 종가로 지금 있는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버렸던 것을 김성일(1538∼1593) 선생이 다시 지은 것이다. 건물은 사랑채, 안채, 행랑채로 구분되는데, 사랑채는 바깥주인이 생활하면서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규모는 앞면 4칸·옆면 2칸이고 형태는 一자 형이다. 안주인이 생활하면서 집안 살림을 맡았던 안채는 ㅁ자형이고 다른 주택과 달리 안방이 바깥쪽으로 높게 자리를 잡고 있다. 행랑채는 사랑채와 안채가 연결되어 있는 특이한 구성을 이루고 있으며 전체 가옥 구성이 巳자 모양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행랑채에서 안뜰로 통하는 중문이 없어 외부 사람이 드나들 수 없었는데 이것은 당시 유교 사상의 남녀유별, 내외 사상을 건물구성에 반영하였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사랑채 출입은 행랑채의 대문을 거치지 않고 사랑채로 직접 갈 수 있는 별도의 문이 있다. 사랑채와 행랑채를 이어주는 건물은 2층으로 되어 있으며 위층은 서재로, 아래층은 헛간으로 쓰인다. 이와 같은 2층 구조는 다른 주택에서는 보기 드문 양식이다. 훗날 추가로 연결한 서쪽 끝의 대청문은 지붕이 커, 집 전체 겉모습에 웅장한 느낌을 주고 있다. 건물은 간략한 양식으로 지었지만 보기드문 주택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선시대 민가 건축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 조선 중기의 학자, 청계 김진에 대하여 * 청계 김진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다. 할아버지는 진사 김만근이고, 아버지는 교위 김예범이며, 어머니는 군수 신명창의 딸이다. 김진은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나고 뜻이 높아 기묘명유(己卯名儒)들을 찾아 가르침을 배워 견문을 넓히고 학업에 정진하였다. 또한 음사(淫祠)나 귀신은 자신의 몸을 더럽힌다고 여겨 이를 멀리하자 무당이 그가 사는 마을에 감히 들어가지 못하였다. 김진은 다섯 아들인 김극일, 김수일, 김명일, 김성일, 김복일에게 “사람이 차라리 곧은 도(道)를 지키다 죽을지언정 무도하게 사는 것은 옳지 않으니, 너희들이 군자가 되어 죽는다면 나는 그것을 살아 있는 것으로 여길 것이고, 만약 소인으로 산다면 그것을 죽은 것으로 볼 것이다”라고 훈계하였다 한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조선시대 민가건축연구의 소중한 자료, 안동의성김씨종택 * 안동 의성김씨 종택은 의성김씨 청계(靑溪) 김진(金璡, 1500~1580)의 종가로 지금 있는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버렸던 것을 김성일(1538∼1593) 선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