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막골유원지
서울에서 두시간 거리에 있는 동막계곡은 수도권 주민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아 당일치기로 호젓한 피서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어른 허리 깊이의 소가 군데군데 있어 가족끼리 물놀이를 즐기기에도 알맞고 계곡 주변에 기암괴석과 자연림이 아우러져 자연의 신비함을 더해준다. 또한 동막리 남
계곡 주요 정보
지번주소 |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동내로 636-2 | ||
도로명주소 | None | ||
전화번호 | 031-834-2211 | ||
홈페이지 | 홈페이지로 이동 |
주변 관광지 3개
주변 캠핑장 5개
우리야영장은 경기 연천군 연천읍 동막리 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10개의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오토캠핑장은 경기 연천군 연천읍에 위치하고 있으며
연천 한여울팜파크 글램핑장은 경기 연천군 연천읍에 위치하고 있으며 온라인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전기, Wi-Fi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로얄카바나는 경기 연천군 연천읍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기, Wi-Fi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연천 라벤트리글램핑존은 경기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총 10개의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연천군, 2.9km
주소 : 경기도 연천군
문의 : 031-834-2211
경기도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은 포천시, 서쪽은 장단군, 남쪽은 양주시, 동두천시, 파주시, 북쪽은 강원도의 철원군과 경계하고 있다. 면적은 695.61㎢이고 인구는 45,616명(2012년 10월 말 현재)이다. 2읍 8면 96리가 있다. * 자연환경 동부에는 광주산맥의 줄기가 뻗어 고대산, 지장봉, 보개산 등의 산지가 분포하고, 서북부도 마식령산맥의 줄기가 뻗어 비교적 높은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그 사이를 추가령지 구대가 남북으로 통과한다. 군의 북동부는 철원용암대지이며 한탄강이 이 용암대지를 깊게 파서 협곡을 이룬다. 임진강이 이 지구대를 남쪽으로 흘러 그 지류인 한탄강과 남부에서 합쳐 서남쪽으로 흐른다. * 역사 고대 - 삼한시대에는 진번군의 영향권에 있다가, 고구려의 영토가 되어 백제의 세력권에 속하게 되었다. 최초로 공목달현으로 불렸고 신라시대에는 공성현으로 개칭되었으며, 757년(경덕왕16) 칠성군의 영현이 되었다. 한편 마전지역은 고구려 때는 마전천현, 신라 때는 임단현으로 불렸고, 적성지역은 고구려 때는 칠중현, 칠중성현으로 불렸으며, 신라 때에 칠중현으로 개칭되어 내소군의 영현이 되었다. 삭녕지역도 고구려때는 소읍두현, 신라 때에 삭읍으로 개칭되었고 승령도 고구려때는 승량현이었는데 신라때 동량현으로 개칭되어 칠성현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 - 태조때에 장주로 개칭되었고 1018년(현종9) 장주를 다시 동주에 속하게 하였다가 1175년(명종5) 철원과 분리하여 감무를 두었는데 승령현의 감무가 겸임하였다. 1309년(충선왕1) 이름을 바꿔 오늘날의 지명인 연천으로 개칭하였다. 또한 마전지역은 태조 때 마전현으로 개칭되었고, 현종 때 장단의 영내에 속하여 상서도성의 관리하에 있다가 1063년(문종17) 개성부의 직할이 되었으며, 예종 때 적성현에 병합되었다가 1389년(공양왕1) 다시 분리하여 감무를 두었다. 적성지역은 태조 때 적성현으로 개칭되었고, 현종 때 장단군 임내에 속하여 상서도성의 관장하에 있기도 하였다. 문종 때에 다시 개성부 직할로 되었다가, 1106년(예종1) 다시 분리하여 감무가 배치되었다. 삭녕지역도 태조때 삭녕현으로 개칭하였고, 예종때 승령현에 감무를 배치할 때 삭녕을 이에 속하게 하였으며, 승령도 태조 때 승령현으로 되어 삭녕현과 함께 철원 임내에 속하였다가 다시 분리되었다. 조선 - 1414년(태종14) 마전현을 병합하여 마전현으로 하였다가 다시 분리하여 연천현으로 하였다. 현종 때에 이르러 다시 마전과 합쳤다가 1684년 연천현이 되었다. 또한 마전지역은 태종때 마전현감이 임명되기도 하였으며, 1452년(문종2) 숭의전이 있는 고장이라 하여 마전군으로 승격되었다. 적성지역은 태종 때 현감이 배치되어 1895년까지 계속되었으며, 승령현도 태종 때에 지군사를 두었다. 근대 - 1907년 철원군의 일부를 병합하여 연천군이 되었고, 1914년 마전,적성의 2개군과 삭녕군의 대부분 및 양주군의 일부를 분할하여 연천군에 편입, 병합되었다. 현대 - 1945년 적성면과 남면 전부와 백학면, 전곡면 일부는 38선 이남에 속하고, 연천군 관인면, 중면, 삭녕면, 서남면, 왕징면, 미산면, 군남면 전부와 백학면, 전곡면 일부는 38선 이북에 속하게 되었다. 그 뒤 1963년 파주군 적성면의 눌목리를 전곡면에, 삼화리를 미산면에 강원도 철원군 신서면이 연천군에 각각 편입되었고, 1979년 연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 관인면 일원이 포천군, 포천군 청산면 일대가 연천군 청산면에 편입 되었으며, 1985년 전곡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 문화 민속 - 미산면 아미리에서 전승되는 울어리 놀이와 백학면과 미산면 등지에서 행해지던 호미씻이놀이가 있다. 추수 전에 행해지는 울어리놀이는 노동요를 부르면서 진행되는데, 그 과정은 풋나무베기, 남녀행차, 마당놀이로 구분된다. 호미씻이는 마을 청년을 중심으로 농번기에 어려운 일을 협동으로 한데서 유래된 것으로 농삿일이 거의 끝나는 7월에 길일을 택하여 행한다. 이날이 되면 마을에서는 농기를 한데 모아놓고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농사의 노고를 서로 위로 하며 한마당 놀이를 벌이게 된다. 동제 - 일명 고창굿으로 불리는 진좌제가 장남면 고랑포리에 있는 부군당에서 3년마다 음력 2월초에 길일을 택해 나흘간 진행된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경기도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은 포천시, 서쪽은 장단군, 남쪽은 양주시, 동두천시, 파주시, 북쪽은 강원도의 철원군과 경계하고 있다. 면적은 695.61㎢이고 인구는 45,616명(2012년 10월 말 현재)이다. 2읍 8...
연천역 급수탑, 3.3km
주소 :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연천역로5번길 9
연천역 급수탑은 1919년 인천-원산간 중간지점에 세워진 철도 급수탑으로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시설이다. 증기 기관차와 급수탑은 1899년 9월 서울-인천간 경인선이 개통되면서 처음 등장하여 교통수단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하였으나 1950년대 디젤기관차가 등장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일제시대 세워졌던 연천역사의 시설물들은 한국전쟁시에 폭격에 의해 모두 사라졌으나 급수탑만은 원형대로 잘 남아 있다. 건립 당시에는 기관차 뒤에 달린 탄수차(炭水車)에 물을 공급하는 동안 물물교환 등 상거래가 활발하여 시장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6·25 이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북한의 최남단 지역이었고 경원선을 통한 북한의 군사물자가 대량으로 하역되었다. 이 때문에 하얀색의 이 급수탑을 좌표로 삼아 미군의 폭격이 극심하였고 아직도 건물에 탄흔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연천역 급수탑은 강원도 도계역 급수탑, 추풍령역 급수탑, 충남 연산역 급수탑, 경북 안동역 급수탑, 영천역 급수탑, 경남 삼랑진역 급수탑과 함께 철도 역사의 이해와 근대 교통사 연구를 위한 주요 유산으로 인정받아 2003년 1월 등록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연천역 급수탑은 1919년 인천-원산간 중간지점에 세워진 철도 급수탑으로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시설이다. 증기 기관차와 급수탑은 1899년 9월 서울-인천간 경인선이 개통되면서 처음 등장하여 교통수단으...
연천향교, 3.5km
주소 :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지혜로117번길 20 (차탄리)
문의 : 031-839-2063
조선시대부터 유현(儒賢)에 대한 제향과 연천지방 관학(官學)의 중심기능을 담당해왔던 연천향교는 1379년(태조7)연천현의 관아에서 동쪽으로 1리 지점 (현 연천읍 읍내리 내)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 오며, 당시의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단, 신문, 창고, 수복실 등 5동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1658년(효종 9)에 이르러 관아 북쪽의 2리 지점인 현재의 윗샘골로 이건하여 계속 존속하게 되지만 그 후로 연천향교의 연혁은 문헌자료의 미비로 상세하지 않다. 1910년 일제 강점후, 우리의 전통적인 유교정신을 약화시키려는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의해 1914년에 이르러서는 마전과 삭녕향교에 통합시켜 향교는 학술강습소로 이용되었고, 이어 보통학교로 승격시켜 초등교육을 실시하는 등의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으로 시련을 겪어 왔으나, 8.15광복 이후 공산치하와 6.25로 인하여 건물 전체가 안타깝게 전소되게 되었다. 전 후 수복이 되고 1965년에 이르러 관내 유림들의 노력에 의해 현재 준공된 향교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이익공 맞배양식으로 된 대성전과 콘크리트 슬라브조의 명륜당을 신축하였으나, 향교 전면으로 도로가 확장되면서 현재의 위치에 1989년부터 1994년까지 연차적인 공사에 의해 대성전 명륜당, 동 서재, 내외삼문 등의 건물을 새로 건립하여 완공을 보게되었다. 현재 연천향교 대성전에는 중국의 5성위와 송나라 2현(예국공 지사), 우리나라 18현의 존패가 봉안되어 있고, 매년 가을 공자탄강일을 맞이하여 관내유림들에 의해 제향이 받들어 지고 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조선시대부터 유현(儒賢)에 대한 제향과 연천지방 관학(官學)의 중심기능을 담당해왔던 연천향교는 1379년(태조7)연천현의 관아에서 동쪽으로 1리 지점 (현 연천읍 읍내리 내)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 오며, 당시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