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둔사계곡
한반도의 남쪽 끝 두륜산에 있는 계곡으로, 고찰 대둔사로 인하여 더욱 유명해진 계곡이다. 특히, 대둔사에 이르는 길 입구부터 2km 구간에는 수백 년 묵은 갖가지 수목이 우거져 가을에는 단풍이 현란하고, 여름에는 녹음이 짙다. 계곡물을 왼편에 끼고 이어지는 절 앞길은 군데군데 적송이 치솟아
계곡 주요 정보
지번주소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큰길 50 | ||
도로명주소 | None | ||
전화번호 | 061-533-0088, 5543 | ||
홈페이지 | 홈페이지로 이동 |
주변 관광지 3개
주변 캠핑장 5개
구수골 계곡 야영장은 전남 해남군 현산면 황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맨흙 사이트가 총 10개로 구성되어 있고,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주작산 자연휴양림은 전남 강진군 신전면 수양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자체/개인휴양림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데크 사이트가 총 10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주작산 별소리캠핑장은 전남 강진군 신전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파쇄석 사이트가 총 14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매점, 장작판매, Wi-Fi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덕룡산캠핑장은 전남 강진군 도암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완도청소년수련원야영장은 전남 완도군 군외면 불목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잔디, 데크, 맨흙 사이트가 총 30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두륜산 대흥사, 554m
주소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
문의 : 061-534-5502
대흥사는 해남읍에서 동남쪽으로 12km쯤 떨어진 두륜산 도립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백제 무령왕 14년에 신라 승려인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하며, 그후 수차례의 중수를 거쳤다.선조 37년(1604)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적을 앞두고 마지막 설법을 한 서산대사는 제자인 사명당 유정과 뇌묵당 처영스님에게 "재난이 미치지 않고 오래도록 더렵혀지지 않을 곳" 이라며 해남 대둔사에 자신의 가사와 발우를 두라고 부탁했다. 그 후로 절은 사세가 번창하고 그의 법을 받아 근세에 이르기까지 13명의 대종사와 13명의 대강사를 배출하며 선교 양종의 대도량으로 자리잡았다. 일제 때는 대흥사라 고쳐불리다가 1993년 대둔사라는 이름을 회복했다. 서산대사는 조선중종-선조대의 고승으로 임진왜란당시 의승군을 이끌고 나라를 지킨 인물로 평안도 안주에서 태어나 묘향산, 금강산 등에서 산사의 생활을 하였다. 그는 소년시절 진사시에 낙방하고 호남의 산수를 유람하다가 출가하는 계기를 맞는다. 소백산맥이 서해바다로 향해 달리는 남쪽 끝에 자리한 두륜산에 아도화상이 모후 소지부인을 위해 대둔사를 창건하였는데 서산대사가 대도량으로 키우면서 대흥사로 부르게 되었다. 서산대사는 바다와 산이 이곳을 둘러싸안고 있는데다 골짜기 또한 그윽하여 만세의 땅 삼재불입지처 만년불파지지 종통소귀지처(三災不入之處 萬年不破之地 宗統所歸之處)라 하였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 휘하의 승군총본영이 있었다. 왜란에 선조대왕이 의주로 피난 하자 그는 전국의 승군 5천명을 모아 관군을 도왔는데, 사명은 강원도 금강산에서, 처영은 전라도 지리산에서, 해안은 경상도에서,영규는 충청도에서 승군을 일으켜 스승인 서산을 돕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73세의 고령으로 평양탈환에 공을 세우자 선조는 팔도 선교도총섭(八道禪敎都總攝)이라는 최고의 승직을 내리려하였으나 나이를 내세워 사양하고 묘향산으로 돌아가 국가의 안녕을 기원했다.이여송은 서산대사에게 송시(頌詩)를 한편 보내왔으며 이것은 판각으로 새겨 묘향산 보현사와 밀양표충사에 보관되고 기타의 유물은 대흥사에 보관되어 있다. 송시 (訟詩) 공리(功利)야 생각없고 불도만 닦았고나. 나라일 위급하니 산을 내려왔도다. 그는 선종과 교종의 통합에 힘쓰다가 1604년(선조 37년) 85세로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멸하였다. 저술로 "선가귀감(禪家龜鑑)"과 "청허당집(淸虛堂集)"이 있다. 대둔사를 찾기위해 대둔사 입구로부터 10리나 되는 울울 창창한 나무숲길과 계곡물을 따라 가면 피안교, 일주문을 지나 부도밭을 만난다. 서산대사를 비롯, 대둔사에서 배출한 역대 스님들의 부도와 부도비가 가지런하다. 해탈문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대둔사가람이 펼쳐지는데 전체 경역이 넷으로 나뉘어 각 구역이 돌담으로 둘러있다. 두륜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금당천)을 경계로 북원과 남원으로 나뉘고,다시 남원뒤편으로 뚝 떨어져 서산대사 사당인 표충사 구역과 대광명전 구역이 있다. * 구역별 유적내용 1) 북원구역 : 침계루를 지나 북원 안마당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대웅보전,그 좌우에 명부전과 범종각, 응진전이 나란히 있다. 응진전 앞3층석탑은 이 절의 유물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물 320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남원구역 : 법당으로 천불전과 동국선원이나 용화당 등 강원과 승방 몇 채가 각각 돌담으로 구획되어 있다. 천불전의 지붕과 건물의 맵시가 매우 경쾌하며 정면3칸 분합문전체가 아름다운 꽃창살이다. 내부에는 경주에서 실어온 옥돌 불상 천개가 빽빽하다. 3) 표충사 : 절에서는 흔하지 않은 유교형식의 사당으로, 서산대사를 중심으로, 사명당 유정, 뇌묵당 처영 스님의 화상을 봉안하고 있다. 유물전시관에는 서산대사의 가사와 발우, 친필 선시, 신발, 선조가 내린 교지 등 유물과 정조가 내린 금병풍 등이 보관돼 있다. 4) 대광명전구역: 표충사 뒤편으로 300미터쯤 들어간 곳에 호젓하게 자리한 대광명전은 현재 선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외에 8칸짜리 일자집인 보현각, 요사채도 있다. 이밖에 경내 당우들에 걸려있는 현판글씨들은 당대 명필들이 쓴 조선시대 서예의 진면목을 보여준다.표충사는 정조대왕, 대웅보전, 천불전, 침계루는 원교이광사, 백설당 지붕 밑 무량수각은 추사 김정희, 가허루는 전주에서 활약하던 호남의 명필가 창암 이삼만의 글씨이다. 두륜산은 정감록의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이기도 한해발 703m의 산으로 코스가 험하지 않아 2~3시간 정도면 정상에 이를 수 있다. 구름다리는 정상으로 가는 명소이며 남쪽 억새밭 능선을 따라 남해의 그림같이 떠 있는 다도해를 감상할 수 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대흥사는 해남읍에서 동남쪽으로 12km쯤 떨어진 두륜산 도립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백제 무령왕 14년에 신라 승려인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하며, 그후 수차례의 중수를 거쳤다.선조 37년(1604) 묘향산 원적암...
표충사, 770m
주소 :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산16
문의 : 061-534-5502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운 서산대사(1520~1604)를 모시는 사당이다. 현재 그의 제자인 유정과 처영의 영정도 함께 모시고 있다. 서산대사는 9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듬해 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서울에 올라와 절에 기거하며 글과 무예를 익혔다. 그러던 중 영관대사의 설법을 듣고 불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훗날 스스로 머리를 깎고 출가하였다. 명종 4년(1549)에는 승과에 급제하고 벼슬을 제수 받았으나 사양하고 유명한 산을 돌아다니며 후학들을 만나 친절히 지도해 주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늙은 몸을 이끌고 전국의 승려들에게 격문을 돌려 나라를 지키는데 앞장서도록 하였다. 묘향산에서 1,500여 명, 그의 제자인 유정은 금강산에서 700여 명, 처영은 지리산에서 1,200여 명의 승병을 모집하여 순안, 평양 등지에서 왜구를 토벌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전쟁 이후 그는 승려로서 최고의 존칭과 정2품 당상관 작위를 받았으며 묘향산에서 선조 37년(1604) 입적하였다. 이 건물은 조선 정조 12년(1788)에 세웠으며 앞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 (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운 서산대사(1520~1604)를 모시는 사당이다. 현재 그의 제자인 유정과 처영의 영정도 함께 모시고 있다. 서산대사는 9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듬해 아버지마저 돌아가시...
진흥사(해남), 5.1km
주소 :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신풍리길 56-103
땅끝 마을 해남 하면 생각나는 대둔산. 기암 봉우리들이 산꼭대기를 에워싸고 있어 마치 산이 머리에 왕관을 쓴 듯하다 하여 두륜산으로 불리웠던 곳이다. 이곳 남쪽자락에는 대흥사가 있고 북쪽에는 산내 암자인 진흥사가 자리하고 있으며 10여개의 크고 작은 암자가 대둔산을 지켜오고 있다. 서산대사가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않는 곳이며 만년 동안 마르지 않는 땅이라 하여 명당 터로 지목되기도 하였다. 대흥사와 진흥사가 자리한 이 지역은 원래 해남 대둔산 일원으로서 1975년 명승 제4호로 지정되었다가 1998년 12월 23일 사적 및 명승 제9호 대둔산 대흥사 일원으로 다시 지정되었다.대둔산은 무등산맥에 속하는 산으로 북동쪽의 두륜산(頭輪山)과는 자매봉을 이룬다. 대둔산은 왕벚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173)를 비롯하여 후박나무, 동백나무, 비자나무, 물푸레나무, 박달나무 등 온대림으로 구성된 삼림지역으로서 경관이 뛰어나다. 대둔산은 두륜산까지를 포괄하며, 그 어귀에 위치한 대흥사까지도 포함한다. 두륜산은 해발고도 703m , 대둔산은 672m로 비슷한 높이로 남해와 완도를 마주보는 위치에 있다. 대둔산은 기암과 반암으로 절경을 이룬 곳이 많고, 깊고 좁은 골짜기를 형성하였다. 이곳은 예로부터 ‘만년불패지지(萬年不敗之地)’로 전해오고 있는데 역사상 전란의 피해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근세 말에 초의선사(草衣禪師)와 김정희(金正喜)와의 교우 관계가 유명하며, 초의의 <다신론(茶神論)>등의 저술이 대둔산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명산에 자리한 진흥사(眞興寺)는 대흥사의 암자였으며 현산면 조산마을 뒷편에 있다. 진흥사는 1909년 김 진성각(眞性覺)스님이 창건한 이래 몇차례에 걸쳐 절 이름이 바뀌었는데 대둔산 도솔봉 밖에 있기 때문에 대둔사 쪽에서 보다 현산면으로 가는 게 경치도 좋고 빠르게 갈 수 있다. 이 암자는 예전부터 대둔사 소속 암자였으며 처음 양도암(養道庵)에서 양도사로 고쳤으며『대둔사지』 편찬 당시에는 폐찰되어 터만 남았던 곳에 조산마을에 살던 불자 김수복씨가 1940년 경에 중건하고 진흥사라 하였다. 김수복씨는 이 암자 근처에서 돌부처를 발견하여 이 부처님를 모시는 암자를 지었는데, 그 후로 또 금부처를 발견해서 여기에 봉안하고 있다. 현재는 태고종 소속 사찰로 사세는 미약하지만 주위의 산세와 잘 어울린다. 이곳에서 바라보면 월송 마을 쪽으로 펼쳐진 넓은 들판이 한 눈에 들어온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땅끝 마을 해남 하면 생각나는 대둔산. 기암 봉우리들이 산꼭대기를 에워싸고 있어 마치 산이 머리에 왕관을 쓴 듯하다 하여 두륜산으로 불리웠던 곳이다. 이곳 남쪽자락에는 대흥사가 있고 북쪽에는 산내 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