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암산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 중계동과 남양주시 별내면의 경계에 솟은, 높이 508m의 나지막한 바위산이다. 전체 면적은 약 5,355,396m²(1,620,000평) 정도이다. 1977년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됐다. 산의 모습이 송낙을 쓴 부처의 모습과 같다 해서 불암산이라는 이름이 지어졌고 일명 천보산, 필암산이라고도 한다. 능선이 길게 뻗어 있어 시원한 경치를 맛볼 수 있고 산길도 험하지 않아 가
산 주요 정보
지번주소 | 서울 노원구 상계동 , 경기도 남양주시 | ||
전화번호 | |||
홈페이지 | 홈페이지로 이동 |
주변 관광지 3개
주변 캠핑장 5개
산들소리 수목원 캠핑장은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잔디, 데크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도봉야영장은 경기 의정부시 창포원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18개의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도봉산 홀리데이파크는 경기 의정부시 호원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총 3개의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수락 캠핑장은 경기 의정부시 산곡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무수아취는 서울 도봉구 도봉로169길에 위치하고 있으며 온라인예약대기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전기, 온수, 매점, Wi-Fi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천보사(경기), 2.6km
주소 :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불암산로97번길 32-200
문의 : 031-528-8780
* 자연적으로 보살의 모습이 보여지는, 천보사 * 불암동 입구에서 불암산을 바라다보면 서쪽 편 정상부가 커다란 암벽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송낙을 쓴 부처님 같은 이 바위산에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보궁이 있어 대자연의 신령스러운 기운을 느낄 수가 있다. 예로부터 기도영험이 많은 사찰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데, 이곳 천보사 천연보궁(天然寶宮)도 그와 같다. 현재 천보사 뒤 병풍을 두른 듯 펼쳐져 있는 암벽에는 바위에서 불쑥 튀어나온 듯하게 여래좌상이 조각되어 있다. 그러나 천보사가 천연보궁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따로 있다. 보는 위치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천보사 뒤 커다란 암벽은 코끼리 모습을 하고 있다. 매끄럽게 내려오는 암벽의 굴곡은 언뜻 보기에 세 분의 부처님이 서 있는 듯 한 착각이 들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산삼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 옆에는 동자가 서 있는 듯 하다. 또한 다른 면에는 보살의 옆모습이 보여지기도 한다. 이렇듯 자연적으로 불, 보살의 모습이 이루어진 곳은 그리 흔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천보사를 천연보궁이라 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기도를 하여 감응(感應)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손으로 만들지 않고 자연의 조화로 불?보살이 몸을 나투신 천보사는 사찰의 이름처럼 하늘아래 가장 보배로운 사찰이다. * 천보사의 역사 * 천보사의 창건과 연혁은 오랜 세월 속에 묻혀버려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다만 사찰에 세조와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질 뿐이다. 즉 세조(世祖)가 이 일대를 유람하다가 불암산의 수려한 모습에 감동하여 ‘천보산(天寶山)’라는 이름을 내렸는데, 그때 천보산 중턱에 천보사를 창건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문종실록(文宗實錄)』의 문종1년(1451) 3월 병진일(丙辰日)에 의정부(議政府)가 원유(園?:왕실의 사냥터)의 혁파를 건의하는 내용의 상소문을 올리는데 그 상소문 안에 “천보사 인근의 산들”이라고 천보사가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내용으로 볼 때 1451년 당시까지도 천보사는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후 천보사에 관한 기록은 그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아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다. 현재 사찰에 전하는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 오층석탑인데, 그 조성년대가 조선말기의 양식을 띠고 있다. 이로보아 조선말기에 중창이 있은 듯 하며,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천보사는 다시금 폐허가 되었다. 그러던 것을 해방직후에 동훈스님이 새로이 중창을 하여 현재의 천보사로 기틀을 마련하였다. 근래에는 지한(志閑)스님이 2002년에 대웅전과 요사를 신축하였으며, 2005년에는 불교대학을 개설하여 신도교육과 가람 중흥에 매진하고 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자연적으로 보살의 모습이 보여지는, 천보사 * 불암동 입구에서 불암산을 바라다보면 서쪽 편 정상부가 커다란 암벽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송낙을 쓴 부처님 같은 이 바위산에는 자연적으로 만들어...
내원암(경기), 2.6km
주소 :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순화궁로909번길 104
문의 : 031-841-8794
* 경기도의 갓바위, 내원암 * 수도권 시민들의 편안한 쉼터가 되고 있는, 아름다운 명산 수락에는 ‘경기도의 갓바위’라는 별칭을 얻고 있을 만큼 수많은 기도 영험담을 갖고 있는 기도도량 내원암이 있다. 미륵부처님이 상주하시는 곳, 도솔천 내원궁에서 그 이름을 따온 내원암은 수락산 중턱에서 조금 더 올라간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경전 속 내원궁의 묘사가 그러하듯 내원암도 사방을 둘러보는 눈 맛이 시원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내원암은 성절(聖寺)이라고 불리어 오던 절로 조선 후기에 왕실의 도움으로 사세를 확장시켰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후사가 없던 정조는 대구 팔공산 파계사의 승려인 용파(龍坡)대사로 하여금 내원암에서 기도를 올리게 하여 후궁인 수빈 박씨에게서 순조를 얻었다고 한다. 그로 말미암아 왕실과 관련을 맺은 내원암은 이후에도 왕실의 내탕금으로 여러 당우들을 중수하는 등 불사를 이어왔다. 이러한 영험 때문인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은 내원암을 찾는다. 내원암에 오르는 228개의 좁고 높은 돌계단. 성절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많은 인내가 있어야 하지만 모두들 주저함이 없이 올라간다. 그 이유는 아마도 정상에 올라서면 부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희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 내원암의 유래와 역사 * 내원암은 《봉선사본말사지》에 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나와 있지만, 사찰의 면모를 온전히 갖추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부터로 1794년(정조 18)부터 왕실의 적극적인 후원과 승려들의 노력으로 사세가 점차 번창하였다. 1794년 조정의 지원으로 내원암 서쪽에 칠성각(七星閣)을 지었으며, 1796년 사성전(四聖殿)을 건립하였고 1825년에 지족루(知足樓)를 새로 지었다. 이어 1880년(고종 17)에는 조정에서 내원암의 모든 전각을 중건하였다. 이후 1950년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으나 1955년부터 다시 옛 모습을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비구니 성민(性敏)스님이 칠성각과 요사·대방(大房)을 신축하였으며, 1968년에는 대웅전을 새로 건립하였다. 그 후 영산각(靈山閣)과 요사 2동이 지어졌고 미륵전을 복원하였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경기도의 갓바위, 내원암 * 수도권 시민들의 편안한 쉼터가 되고 있는, 아름다운 명산 수락에는 ‘경기도의 갓바위’라는 별칭을 얻고 있을 만큼 수많은 기도 영험담을 갖고 있는 기도도량 내원암이 있다. 미...
학도암(서울), 2.8km
주소 :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산102
서울 근교에 자리한 사찰 가운데 학이 날아와 놀았다는 사찰은 아마도 학도암 뿐일 것이다. 그만큼 주변의 경치가 학이 와서 놀만큼 빼어나게 아름다웠다는 의미이다. 지금도 학도암 주변은 이름에 걸맞게 경치가 좋다. 한여름에는 푸른 숲과 어울려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그 속에서 천진한 어린이들이 뛰어논다. 겨울이면 나뭇가지 위로 눈이 덮여 설국이 연출되기도 한다. 산중에 자리한 사찰치고 그러한 풍경을 가지지 않은 곳이 어디있겠냐 싶지만 학도암은 불암산의 감추어진 비경이 아닐 수 없다. 학도암의 상징은 암자 뒤쪽 커다란 바위 면에 새겨진 높이 13.4m 에 이르는 거대한 마애관음보살좌상이다. 이 마애관음보살좌상은 1870년(고종 7) 명성황후가 발원하여 조성했다고 하는 것으로 자비로운 미소로 중생을 굽어 살피고 있어 학도암 뿐만 아니라 노원구의 명물이기도 하다.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은 전국적으로 많이 남아있지만 관음보살을 새긴 것은 많지가 않아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중 학도암 마애관음보살좌상은 가장 크고 선명하게 남아있어 중요한 문화재로 여기고 있다. 이처럼 학도암은 학이 날아와 놀만큼 아름다운 경치를 주변에 두고 전국에서 가장 큰 마애관음보살상 아래에서 향화(香花)를 올리고 있는 소중한 도량이다. * 창건배경 및 역사학도암은 1624년(인조 2) 무공화상(無空和尙)이 불암산에 있던 옛 암자를 지금의 자리로 옮겨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기의 사정을 적은 기록이 없어 옛 암자라고 한 것이 어디에 있었으며,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1927년 편찬된 『봉선본말사지(奉先本末寺誌)』「학도암(鶴到庵)」조에 의하면 창건이후 250여년의 역사는 공백으로 남아있고, 1878년(고종 15)에 가서야 벽운화상(碧雲和尙)이 재창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학도암 주차장 아래 자연암벽에 선각(線刻)으로 조성되어 있는 2기의 부도가 있어 1878년 벽운화상이 재창한 이전의 역사를 말해준다. 이 부도는 왼쪽부터 “청신녀월영영주지탑(淸信女月影靈珠之塔)”“환□당선사취근지탑(幻□堂禪師就根之塔)이다. 이 가운데“청신녀월영영주지탑(淸信女月影靈珠之塔)”은“가경이십사년기묘십월(嘉慶二十四年己卯十月)”이라는 명문이 함께 기록되어 있어 1819년(순조 19)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환□당선사취근지탑(幻□堂禪師就根之塔)도 19세기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이 된다. 또한 사찰의 뒤쪽 암벽에 선각된 마애관음보살좌상을 1870년(고종 7) 명성황후가 발원하여 조성했다고 한다. 이로 볼 때 1819년 무렵과 1870년 무렵에도 사찰은 법등을 이어오고 있었으며, 1875년에 이르러 벽운화상이 중창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에는 1878년 한씨(韓氏) 일가의 시주로 마애관음좌상을 보수하였고, 다시 1885년(고종 22) 벽운화상이 화승(畵僧) 경선화상(慶船和尙)을 불러와 불상 1구를 개금하고 불화 6점을 그려 봉안하였다. 이 시기 불사에 관한 내용은 〈천보산학도암개금탱화시주록기(天寶山鶴到庵改金幀畵施主錄記)〉로 기록되어 『봉선본말사지(奉先本末寺誌)』에 전하고 있다. 1922년에는 성담(聖曇)화상이 주지로 머물며 개인소유로 넘어간 사찰 소유의 산림(山林) 10여 정보를 매입하여 사찰의 경계를 확장하였다. 그 후 1966년에 이르러 김명호 주지가 퇴락한 법당을 중건하였으며, 1970년에 영산회상도를 봉안하였다. 1972년에는 삼성각에 칠성탱과 산신탱을 봉안하였다. 2000년에는 한사람이 겨우 출입할 수 있을 정도였던 자연 동굴을 넓혀 안에 석조약사여래좌상과 일광보살좌상, 월광보살좌상을 봉안하고 약사전이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2005년에는 무이(無二) 주지스님이 법당 오른쪽 공터에 430cm 높이의 석조지장보살좌상을 봉안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서울 근교에 자리한 사찰 가운데 학이 날아와 놀았다는 사찰은 아마도 학도암 뿐일 것이다. 그만큼 주변의 경치가 학이 와서 놀만큼 빼어나게 아름다웠다는 의미이다. 지금도 학도암 주변은 이름에 걸맞게 경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