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남산은 경주시의 남쪽에 솟은 산으로 신라인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다. 금오봉(468m)과 고위봉(494m)의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40여개의 계곡과 산줄기들로 이루어진 남산은 남북 8km, 동서 4km로 남북으로 길게 뻗어내린 타원형이면서 약간 남쪽으로 치우쳐 정상을 이룬 직삼각형 모습을 취하고 있다. 100여 곳의 절터, 80여 구의 석불, 60여 기의 석탑이 산재해 있는 남산은
산 주요 정보
지번주소 | 경북 경주시 탑동 , 배동, 내남면 | ||
전화번호 | 054-777-7142 | ||
홈페이지 | 홈페이지로 이동 |
주변 관광지 3개
주변 캠핑장 5개
용장 글램핑은 경북 경주시 내남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게스트 글램퍼는 경북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기, 온수,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금오봉 후연지 캠핑장은 경북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14개의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Wi-Fi 등의 편의시설과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경주 남산가족쉼터캠핑장은 경북 경주시 배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맨흙 사이트가 총 48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매점, 장작판매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오토캠핑장은 경북 경주시 내남면 망성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파쇄석 사이트가 총 15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경주 남산동 동ㆍ서 삼층석탑, 3.3km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새남산길 62 (남산동)
남산사지의 쌍탑중 동탑은 모전석탑(模塼石塔)이고 서탑은 일반형 석탑이다. 동탑은 넓은 2중의 지대석 위에 팔개의 석괴로서 기단부를 이루고 있다. 각층의 탑신과 옥개석은 일개의 석재로 되어 있으며 표면에 조식(彫飾)이 없다. 탑신부의 중적수법(重積手法)은 일반형 석탑과 다름없이 옥개석과 탑신은 층층이 체감의 비율을 보이고 옥개석 받침은 초층부터 5단, 5단, 4단으로 되어 있다. 상륜부는 노반만 남아있고 나머지는 결실되었다. 이에 대한 서탑은 이중기단 위에 삼층석탑을 세웠다. 하대석과 하층기단면석을 일석으로 만들어 서석으로 구성하고 서석에는 각면(各面) 이주식(二柱式)의 당주를 표시하고 있다. 하대갑석은 대소사석(大小 四石)으로 상층기단서석을 받고 있으며 면석의 각면은 당주로서 이구로 나누고 각구 안에 팔부중상(八部衆像) 일구식(一軀式)을 양각하였다. 상대갑석은 이매(二枚)의 판석으로 되어 있으며 상면에 이단의 받침이 있어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석이 각각 일매석으로 되어 있고 각층마다 체감의 비율이 되어 있으며 탑신은 각층마다 우주형이 표시되어 있다. 옥개석은 처마 끝이 직선을 이루었고 옥개 받침은 각층 5단이며 그 주위로 구조가 돌려 있다. 상륜부는 노반만 남아있고 나머지는 결실되었다. 이 양탑의 건립연대는 그 양식으로 보아 9세기경으로 추정되며 이 곳 절 이름은 알 수 없다. * 연혁(유래)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형식을 달리하는 두 탑이 동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높이는 동탑이 7.04m, 서탑이 5.85m로 차이가 있다. 동탑은 3층인데,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模塼石塔) 양식으로, 바닥돌 위에 돌덩이 여덟 개로 어긋물리게 기단을 쌓고 층마다 몸체돌 하나에 지붕돌 하나씩을 얹었다. 지붕돌은 벽돌을 쌓아 만든 것처럼 처마밑과 지붕 위의 받침이 각각 5단이다. 서탑은 이중 기단 위에 3층으로 몸돌을 쌓은 일반형이다. 윗기단의 몸체에 팔부중상을 돋을새김한 것이 독특하다. 팔부신중은 신라 중대 이후에 등장하는 것으로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탑을 부처님의 세계인 수미산으로 나타내려는 신앙의 한 표현이다. * 시대 - 통일신라시대 * 수량 - 2기
출처 : 한국관광공사남산사지의 쌍탑중 동탑은 모전석탑(模塼石塔)이고 서탑은 일반형 석탑이다. 동탑은 넓은 2중의 지대석 위에 팔개의 석괴로서 기단부를 이루고 있다. 각층의 탑신과 옥개석은 일개의 석재로 되어 있으며 표면...
염불사지, 3.3km
주소 : 경북 경주시 남산동
경주 남산동에 있는 안말이라는 곳은 내촌(內村) 또는 내촌리(內村里)라고 불린다. 이곳을 또 피리사촌(避里寺村), 피리촌, 피이촌(避伊村)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미루어 여기가 바로 신라 시대의 사찰인 피리사(避里寺)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남산 동쪽 산기슭에 피리촌이 있었는데 그 곳의 절을 피리사라 하였다. 그 절에는 이상한 중이 있었는데, 늘 아미타불을 외었다. 그 소리가 성 안에까지 들렸는데, 누구 하나 그 소리를 듣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소리가 높고 낮음이 없이 낭랑하기가 한결 같았기에, 사람들은 모두가 그를 공경하여 염불사(念佛師)라 불렀다. 그가 죽은 뒤에 소상(塑像)을 만들어 민장사(敏藏寺) 안에 모시고, 그가 본디 살던 피리사를 염불사(念佛寺)로 고쳤다'고 한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안말에 염불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사찰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경주 남산동에 있는 안말이라는 곳은 내촌(內村) 또는 내촌리(內村里)라고 불린다. 이곳을 또 피리사촌(避里寺村), 피리촌, 피이촌(避伊村)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미루어 여기가 바로 신라 시대의 사찰인 피리사(...
경주 경애왕릉, 3.4km
주소 : 경북 경주시 배동 산73-1
경애왕은 신라 최말기의 왕이다. 성은 박씨이고 휘는 위응이다. 재위 4년 포석정에 遊宴(유연)할 때 불의에 견훤의 습격을 받아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릉은 평범한 원형토분이다. 표면에는 아무 시설이 없고 릉 앞에 석상(石床)이 있으나 이는 최근에 설치한 것이다. 주변에 송림이 울창하고 봉토가 일반묘보다는 크므로 왕릉으로 구전되어 오고 있다. 경애왕의 최후와 당시의 국세가 재기할 수 없을 만큼 기울었다는 정세를 감안하더라도 왕릉으로서는 빈약한 편이다. * 시대 - 서기 926년경 * 연혁(유래) 이 능은 신라 제55대 경애왕(재위 924∼927)을 모신 곳이다. 밑 둘레 43m, 지름 12m, 높이 4.2m 규모로 흙을 둥글게 쌓은 형태이다. 남산의 북서쪽 구릉의 끝이자 인천(麟川;기린내)의 동안(東岸)에 위치하고 있다. 왕은 제53대 신덕왕의 아들로 927년 포석정에서 잔치(연회)를 베풀고 있을 때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생을 마쳤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경애왕은 신라 최말기의 왕이다. 성은 박씨이고 휘는 위응이다. 재위 4년 포석정에 遊宴(유연)할 때 불의에 견훤의 습격을 받아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릉은 평범한 원형토분이다. 표면에는 아무 시설이 ...